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의 취임으로 미국과 브라질 관계는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자유무역협정 체결 등 양국간 관계가 진전을 보인다면 미국과 남미대륙 국가들 사이에는 정치·외교적으로 새로운 차원의 변화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역거래뿐 아니다. 미국이 브라질을 우방국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베네수엘라의 정치불안과 마약과의 전쟁 등 남미의 다양한 문제들을 한결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 이슬람 과격단체 등 국제 테러세력들이 자금 동원의 본거지로 이용하고 있는 아르헨티나 브라질 파라과이 등과의 협력도 수월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불행히도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이같은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다. 현 정부는 브라질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특히 룰라 대통령의 취임식장에 미국의 고위층 지도자가 참석하지 않았다는 점은 더 더욱 실망스럽다. 전 미주기구(OAS) 대사로 워싱턴 정가에서 그다지 명성이 높지 않은 로저 노리에가가 국무부내 남미 담당 최고책임자로 임명된 것 역시 이해할 수 없다. 노리에가는 제시 헬름스 전 상원 외교위원장의 보좌관 출신으로 철저한 반공주의자다.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전문성도 부족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그를 지역 책임자로 임명한 것은 남미국가들의 정서를 이해하지 못한 처사다. 그렇다고 미국이 기회를 완전히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부시 행정부는 지금이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브라질 문제에 보다 정통한 고위급 외교관을 기용,양국간 관계 개선에 나서야 한다. 행정부가 나서지 않는다면 리처드 루거 상원 외교위원장이라도 개입해야 한다. 공개적으로 반미감정을 드러내지는 않더라도 남미지역 사람들은 라틴아메리카에서 미국의 의도를 의심한다. 일부에서는 미국이 남미의 특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미국식 정책을 주입하려 한다고 불만이다. 최근 부시 행정부가 철강과 농산물에 대해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보여준 것을 두고 남미 국가들은 더욱 강한 반미감정을 품게 됐다. 이와 같은 상황을 반영,브라질 정부는 미국에 대해 매우 조심스런 입장을 보여 왔다. 미국과의 친밀감을 강조하면 브라질 국민들은 정부가 미국의 이익을 대변한다며 공개적인 반감을 표시한다. 결국 미국·브라질 관계는 어쩔 수 없이 소원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제 룰라 대통령은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를 주도할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 자신이 노조 대표 출신의 좌익성향 인사이기 때문에 다국적 기업의 이익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워졌기 때문이다. 룰라 대통령은 미국과 진솔하고 생산적인 협상을 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는 외국인투자 유치 방안 등을 마련해 월가의 우려를 잠재웠다. 국가 재정을 건전하게 유지하고 인플레를 잡는 일이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에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적극 알리고 있다. 견고한 경제성장이 바탕이 돼야 복지정책이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점도 널리 홍보하고 있다. 이러한 긍정적 신호들이 구체적인 정책으로 실현되려면 미국은 룰라 대통령을 자유무역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여야 한다. 이라크와 북한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미국은 남미 대륙에서 만큼은 지지세력을 확보해야 한다. 정리=유영석 기자 yooys@hankyung.com -------------------------------------------------------------- ◇이 글은 미국 UCLA 앤더슨 경영대학원의 세바스찬 에드워즈 국제경제학과 교수가 최근 파이낸셜타임스에 기고한 'Washington turns a blind eye to Brazil'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