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서쪽을 향해 자동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역사.문화의 도시 아헨(Aachen). 이곳의 서북쪽에는 '라인강의 기적'을 일궈낸 주역 아헨공대가 자리잡고 있다. 아헨공대는 인근 루르 지방에서 나오는 철광 탄광 등을 산업화하기 위해 지난 1870년 설립된 이래 독일 산.학.연 체제의 원조로 평가받고 있다. 캠퍼스 서쪽 끝에 있는 기계공작실 연구소는 그 대표적 모델로 꼽힌다. 1백년 전통의 이 연구소에서는 공작기계 품질관리 도량형 공정기술 등을 연구하고 있다. 분야별로 1명씩 총 4명의 교수가 운영하고 있다. 박사급 연구원 1백50명에 2백85명의 연구 보조원을 거느린 매머드급 연구소다. 행정 및 기획 홍보를 담당하는 직원도 1백75명이나 된다. 연구소에는 2천여평 규모의 공장이 들어서 있다. 연구원들은 이곳을 '작업 현장'으로 부른다. 공장 옆에는 6층짜리 연구소가 있다. 이 공장의 책임자는 4명의 교수다. 교수가 연구소장이면서 공장장인 셈이다. 연구원들은 모두 기업체에서 주문을 받아 일을 한다. 이곳에서는 설립 이래 지금까지 공작기계를 제작 생산하고 있다. 최근에는 바이오기술(BT)이나 정보기술(IT) 등을 활용해 최신 공작기계를 만들고 있다. 수업도 물론 이곳에서 이뤄진다. 대학생들이 열심히 깎아 만든 베어링이나 톱니바퀴 등을 대학원생인 강사가 평가한다. 제품이 만족스럽지 못할 경우 강사는 다시 작업토록 지시한다. 독일식 도제교육의 현장인 셈이다. 교수들은 과제를 따오기 위해 기업인들과 만나는 등 연구소 경영에 온통 신경을 쏟는다. 지난 1906년에 설립된 이래 이 연구소에서 배출한 공작기계 교수는 5백여명에 이른다. 세계 공작기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연구소에 몸담고 있는 일반 기능인력들은 월급을 받는 연구소 직원이다. 라이문트 카이저씨 홍보담당자는 "기계공작실 연구소는 아헨공대 연구소 가운데 아직도 독일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다"면서 "2천여평의 부지를 추가로 확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3만7천명의 학생은 2백60개 부속연구소와 인연을 맺고 있다. 교수들은 이들 부속연구소를 거의 하나씩 맡고 있다. 부속연구소는 산학체제로 기초연구를 수행하고 산업체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해준다. 신기술 개발도 중요한 과제의 하나다. 학생들은 대학원 과정부터는 연구소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된다. 포드 도요타 필립스 등 세계적인 기업의 연구소들과도 인연을 맺기도 한다. 연구소 프로젝트 기간은 평균 3년정도다. 물론 연장도 가능하다. 9년정도가 걸리는 장기연구과제도 수두룩하다. 당장 응용할 수 있는 분야도 있지만 대부분은 원천기술 연구쪽이다. 아헨공대에서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4명이나 나온 것도 우연이 아니다. 대학과 기업만이 아니다. 아헨시도 대학에 입주하는 기업들을 지원하고 창업을 도와주기 위해 테크놀러지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대학이 잘돼야 시의 경제도 살아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게 연구원 시몬 뮌스터만의 설명이다. 학생과 교수 연구원 등 아헨공대와 인연을 맺고 있는 사람은 5만명에 이른다. 아헨공대가 만드는 프로그램이 고용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박사학위를 따고 세라믹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는 석준원씨는 "아헨에서 박사학위를 받으려면 연구소나 기업체에서 일정 기간 근무해야 하며 박사학위 주제도 산학프로그램과 연관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대학원 입학을 위해서도 기업체에서 2주간은 반드시 근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헨공대에도 최근 변화의 바람이 일고있다. 아시아 및 미국계 유학생이 급증하면서 박사학위 취득 조건을 완화하고 있다. 주니어 교수제를 만들어 30~40대 박사들이 일자리를 확보할 수 있도록 했다. 주니어 교수는 연구소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며 산학연계를 맺는데 앞장서고 있다. 미국식 학제를 본떠 석사학위도 따로 만들었다. 이같은 변화에도 아헨에는 독일의 마이스터 정신이 살아 숨쉬고 있다. 과학기술분야 경쟁력은 바로 이같은 마이스터 전통에서 나오는 것이다. 아헨=오춘호 기자 strong-korea@hankyung.com [ 협찬 :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