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도시계획 용어는 국정에도 자주 쓰이는데,그 중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이 '청사진'과 '마스터플랜'이라는 말이다. 치밀하게 구상하고 면밀하게 분석하여 개념을 명확히 하고 어떻게 지어지는지,한마디로 '최종 그림'이 어떤 건지 '설계도'를 내놓으라는 말이다. "청사진이 없다" "마스터플랜이 없다"는 보통 시민들도 입에 담을 만큼 비판적인 말로 쓰인다. 그런데,사실 이 비유는 구시대적인 비유다. 이 시대의 복합경제화 민주자치화 세계화 정보화시대에는 전혀 적합한 비유가 아니다. 한장의 청사진이나 마스터플랜이 통하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물며 건축물도 요동치는 현장 여건에 따라 끊임없이 수정해야 하고,도시쯤 되면 초기 그림에 연연하다가는 무리한 계획이 될 뿐이다. 더욱이 국정이라는 복합적인 분야에서 마스터플랜적 사고는 경직된 행로를 예고할 뿐이다. 최종의 그림을 그려놓는 '마스터플랜적 사고'는 종종 독재적이 되고 창의성을 억누른다. 무솔리니 히틀러 김일성 등의 독재자들은 전형적인 마스터플래너적 리더였다. 그들이 열광적으로 만든 도시들이 기념비적일지는 몰라도,획일적이고 통제된 도시였던 것은 물론,그들이 했던 국정은 형편무인지경이었고 전혀 지속가능하지 못했다.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마스터플랜이 아니라'포괄 플랜(comprehensive plan)'일 것이다.'전략 플랜(strategic plan),구조 플랜(structural plan)'을 포함한 포괄 플랜이다. 지향하는 가치와 목표를 선명히 하고 원칙과 룰을 정해주되,최종 그림을 정해 두지는 않는 것이다. 대신 그 틀 속에서 각 분야의 개별 행동자들이 자신의 동력과 상상력과 창의성과 추진력으로 그 무엇인가를 해내고 만들어내면서 전체의 그림이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포괄 플랜은 마스터 플랜보다 훨씬 더 힘들다. 당위성보다는 현실성을 견지해야 하고,만드는 사람의 의지를 앞세우기보다는 개별 행위자들의 갈등적인 욕구와 행위 동기를 면밀하게 읽을 수 있어야 하고,결과 이상으로 과정을 중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치 살아있는 생물계의 각 생물에 생존 동기와 번식 동기,번영 동기,위험 예방 동기,도전 동기를 줌으로써 오케스트라를 이루게 하는 현명한 자연원칙을 세우는 것과도 같다. 새로운 국정을 짤 수 있는 이 시점에는 통념적인 마스터플랜을 통해 무언가 가시적인 그림을 그리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마련이다. 정치파워의 유혹이자 예술가적 유혹이라고 할까? 그렇지만 새 시대의 지혜로운 리더십이라면 마스터플랜을 짜려는 유혹을 떨쳐내고 사회 각 분야가 따를 수 있는 포괄 플랜적 마인드를 견지하려 할 것이다. 국정 인수를 준비하는 현재로서는,물론 갈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적어도 방향 설정에서는 좋은 징조들이 눈에 띈다. 정치의 개혁은 정당 안으로부터,국정 운영 개혁은 국회 내부에서부터,경제 개혁은 기업 내부로부터,언론 개혁은 언론 내부로부터,공무원의 개혁은 튼튼한 '허리' 공무원의 동력으로부터의 원칙들이 세워지는 것으로 보인다. 각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스스로 개혁의 동기 부여'를 하자는 것으로 읽힌다. 정부 또는 국정 최고경영자가 나서서 이래라 저래라,없애라 만들라 하지 않는 분위기가 지속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건강하고 합리적이고 지속 가능한 시스템의 건설은 우리 모두 바라는 개혁의 방향이다. '개혁의 속도'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더라도 '스스로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 의문하는 국민은 없을 터이다. 개혁의 주역은 각기의 자리에 있는 한사람 한사람이라 믿고 스스로 움직이도록 새 정부가 촉매적인 분위기를 만들고,운용의 룰만 명쾌하게 짜주기를 정말 바란다. 우리나라는 이제 마스터플랜 시대를 지나고 포괄 플랜적 시대의 꽃을 피울 때다. 가치와 목표를 공유하고 시스템의 룰이 명확히 지켜질 것을 믿을 수 있게 해주기를 바란다. 룰을 짜주고 지키는 국정이 최고다. 각기의 자리에서 창의력을 발휘하고 에너지를 충전하면서 무엇인가를 구상하고 생산하는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하면서도 '지속 가능'한 그림을 만들어내느냐는 각 국민에게 달려있을 뿐이다. 룰 확실한 리더십을 기대한다. jinaikim@seoulforu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