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시장을 선도할 제품을 만들수 있도록 새로운 품질문화를 가꾸자.' 이런 취지로 중소기업 및 대기업의 경영자와 연구소장, 대학교수 등 80여명이 지난해 신품질포럼(위원장 조순)을 발족시켰다. 이 포럼은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올해부터 신품질대상을 시상하고 전문가를 육성할 예정이다. 이 사업을 공동으로 펼치는 한국경제신문은 기업들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 신품질에 관한 글을 정기적으로 게재한다. ----------------------------------------------------------------- "당신의 고객을 무시하라." 이 무슨 황당한 이야기인가. 우리가 지금껏 들어온 것은 '고객은 왕이다' '고객은 언제나 옳다'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고객을 무시하라는 이 충고는 몇 년전 미국의 경제잡지 '포천'이 던진 것이다. 미국 시장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 연구에 의하면 시장에 출시되는 대부분의 신상품은 기존상품의 결점을 줄이거나 성능을 개선한 단순한 개량상품이다. 하지만 큰 이익을 가져다 준 것은 소수의 혁신적 신상품이라고 한다. 그런데 고객의 노예가 되면 개량상품을 지속적으로 내놓을 수 있지만 혁신적인 신상품을 창조할 역량을 상실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품질에 관심을 두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지난 20세기는 한 마디로 '생산성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1900년대 초반에 태동한 과학적 관리에 의해 비로소 대량생산이 가능해졌으며 빈곤의 시대에서 풍요의 시대로 건너올 수 있었다. 통계적 품질관리(SPC)나 무결점(ZD)운동 등과 같은 품질기술의 뒷받침이 없었다면 이러한 생산성 혁명은 결코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유념해야 할 사실은 '높은 품질이란 고객을 만족시키는 것이지 불량으로 인한 손실이나 결함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는 것이 아니다'는 것이다. 오늘날 단순히 결함이나 불량이 없다는 것만으로는 고객을 만족시킬 수 없다. 기업이 생존하고 번영하기 위한 조건을 나타내는 기업 '생존부등식'은 단순하지만 우리에게 큰 통찰력을 제공해 준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가능한 한 높은 가격을 받기 원하지만 가격은 시장에서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기업이 원하는 대로 높일 수 없다. 따라서 통상적으로 기업은 이 부등식의 오른쪽 끝에 있는 원가를 낮추기 위해 골몰한다. 이에 반해 고객은 가능한 한 낮은 가격을 원하지만 자신이 정할 수 없기 때문에 가격에 비해 왼쪽 끝에 있는 가치가 상대적으로 큰 상품을 찾는다. 이처럼 고객의 세계와 생산자의 세계가 유리되어 있기 때문에 생산성 향상을 위해 허리띠를 조이면 조일수록 기업의 장기적 경쟁력이 오히려 저하되는 '생산성 모순'이 발생하게 된다. 품질의 경우도 이와 다를 바 없다. 불량이나 결함을 줄이는데 초점을 맞춘 전통적 품질관리로는 생산성 모순을 피할 수 없다. 품질이란 "고객을 만족시키는 능력"이라는 현대적 정의를 받아들인다면 '결함이나 낭비를 줄인다'는 소극적 자세에서 '고객을 위한 새로운 가치창조'라는 적극적 자세로의 전환이 하루속히 이뤄져야 한다. 따라서 경쟁자가 이루지 못한 매력적, 독창적 제품 및 서비스의 개발로 고객의 요구를 충족시키며 가치를 창출하는 '창조적 품질의 구현'이야말로 품질의 새로운 시대적 사명이라고 볼 수 있다. 전략컨설팅회사인 스트라티고의 게리 하멜 대표는 기존에 하던 일들을 좀 더 잘하기 위해 선도기업을 벤치마킹하는 것만으로는 그들을 따라 잡기 힘들기 때문에 룰 브레이커(Rule Breaker)가 되라고 강조한다. 그는 룰 브레이커의 예로서 커피산업을 재창조한 스타벅스를 들고 있다. 기존의 관행을 거부하고 산업을 재창조한 기업이 어디 스타벅스 뿐이겠는가. 페덱스, 델컴퓨터, 챨스스왑, 보디숍, 아마존, 이베이, 사우스웨스트항공 등과 같이 20세기 후반 혜성과 같이 나타나 업계의 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기업들을 보라. 그들은 모두 고객을 위한 새로운 가치창조에 성공한 기업들이다. 품질은 불량이나 결함을 줄이는 것이라는 근시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과거의 성공은 결국 실패의 씨앗이 될 것이다. 말콤 볼드리지 미국품질상, 유럽품질상, 일본의 데밍상을 모두 수상하여 품질의 전관왕으로 군림하던 제록스가 오늘날 벼랑 끝에 내몰린 것도 결국은 품질의 새로운 사명을 구현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박영택 < 성균관대학교 시스템경영공학부 교수 ytpark@skk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