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교육 열풍이 비단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닌 것 같다. 제3세계 국가들은 물론이고 사회주의체제에서 탈피한 중국 러시아 동구권국가들도 각급 학교의 영어교육에 적극 나서고 있다. 자국어에 대한 긍지가 대단한 프랑스에서조차도 언어정책을 바꿔 영어에 신경을 쓸 정도이다. 언어학자들은 현재 통용되는 언어의 90% 이상이 1백년 이내 소멸될 것이라고 하는데 이는 곧 영어가 생존의 '수단'으로 더욱 중요시될 것이라는 얘기와도 통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영어습득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모국어가 아닌 영어를 배우는 일은 누구에게나 고통이어서 가능한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 나선다. 우리나라에서는 영어의 종주국인 영국 미국 등지로 한해 십수만명의 학생들이 어학연수를 떠나는데,생각만큼 성과가 없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미취학 아동을 대상으로 한 영어 조기교육이 성행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고 한다. 이를 증명하듯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영어유치원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으며 원어민과의 1대1과외도 부쩍 번지는 실정이다. 영어교육이 한창 붐을 타고 있는 시기에 교육인적자원부가 "유아 영어교육이 별 효과가 없다"는 용역연구결과를 발표해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조기 영어학습은 부정확한 발음을 고정시키고 유아들에게 스트레스를 줘 뇌발달에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조기교육론자는 MIT의 언어심리학자인 스티븐 핀커가 '빈 석판(Blank Slate)'이라는 책에서 강조한 "인간의 뇌에는 언어를 익히는 프로그램이 입력돼 있다"는 점을 들어 반박하고 있다. 또 "인간은 선천적으로 언어를 배우게 돼 있어 환경만 주어진다면 외국어 역시 모국어처럼 익힐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재연된 조기교육 논란이 쉽게 끝날 것 같지는 않다. 그 무엇이 진실이든 과잉학습 장애증후군이나 자폐증,각종 스트레스 증세로 병원을 찾는 아이들이 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모양이다. 원인은 부모의 지나친 극성 아니면 잘못된 학습방법,둘 중의 하나가 아닐까.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