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하순부터 달러와 금 값은 1930년대 중반과 비슷한 모습으로 움직이고 있다. 33년 말부터 34년 초 취임한 지 얼마 안된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정부 입장에선 물가 상승과 달러 약세를 희망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대통령의 이같은 언급은 즉각 시장에 영향을 미쳐 금에 대한 달러 가치는 반년이 채 안되는 사이에 70% 가량 떨어졌다. 30년대에 전세계적으로 디플레 현상이 극심해지자 각국 정부는 어쩔 수 없이 자국 통화를 경쟁적으로 평가절하하는 정책을 펼 수밖에 없었다. 자국의 통화 가치를 떨어뜨려 디플레를 수출하려고 했던 것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물가 상승과 달러 약세' 정책을 취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33년까지 주가가 3년 연속 대폭락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업들의 수익 전망은 갈수록 악화됐고 기업들이 갚아야 할 채무는 갈수록 커져 디플레 현상은 심각해지고 주가에 나쁜 영향을 미쳤다. 당시 기업들은 채권이나 주식 발행을 통해 조달한 자금으로 구입한 과잉 설비를 갖고 있었다. 30년대 초 디플레 상황이 계속 이어지면서 국채가 가장 매력적인 투자 상품으로 부상했다. 당시 각국 정부는 높은 디플레 압력으로 자국 통화를 평가절하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현재 세계 각국의 경제 상황은 이러한 30년대와 비슷하다. 각국은 경기회복을 위해 인플레를 피하면서 금리 인하나 재정 확대로 경기를 자극하는 리플레(통화팽창)정책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일본의 시오카와 마사주로 재무상은 엔의 적정 가치는 달러당 1백60엔선 정도로 현재보다 30% 가량 절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의 조시 W 부시 대통령은 각국의 통화가치는 인위적인 조정이 아니라 시장에서 결정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강한 달러'라는 토대가 필요하다는 인식이다. 따라서 달러 가치를 시장에 맡겨두는 정책은 실제로 '고 달러'정책을 의미한다. 그러나 문제점은 있다. 그것은 정부가 추진 중인 감세나 금융완화 정책 등을 실시해도 경제 성장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달러 가치는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디플레 시대에 시장 우선 외환 정책은 자산 가치를 유지하려는 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어떤 국가의 통화도 자산의 안전한 도피처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경제 현실속에서 금이 금융 자산의 투자처로 급부상했다. 세계적으로 수요가 부진해 물가가 안정되지 않을 경우 각국 정부는 리플레 등 적극적인 정책을 추진하게 된다. 금에 대한 자국 통화의 평가절하는 디플레 심리를 없애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 금값 상승은 통화를 평가절하하려고 하는 주요 국의 적극적인 정책이 초래한 결과를 반영하는지도 모른다. 일련의 통화 평가절하 경쟁으로 인해 특정 통화가 안전한 도피처로 장기간 유지되기는 매우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을 투자자들은 알고 있다. 이것이 금이 자산 가치의 표준이 되고 있는 배경이다. 올해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 3대 선진국 경제권의 성장이 감퇴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각국은 이에 따라 보다 적극적으로 리플레 정책을 채택할 가능성이 높다. 세계적인 금 수요 증가에 따라 금값은 지난 1년간 25% 가량 올랐다. 이는 국제 자본 투자가들이 올해에도 세계 각국이 리플레 정책을 적극 펼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정리=최인한 기자 janus@hankyung.com -------------------------------------------------------------- ◇이 글은 미국 아메리칸 엔터프라이즈 연구소의 존 메이킨 수석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기고한 칼럼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