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출신인 박운서 데이콤 부회장(행시 6회)이 지난 1일 회장으로 승진하면서 민간기업으로 나간 공무원들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박 회장은 민간기업으로 자리를 옮긴 공무원 가운데 가장 성공한 사례. 통상산업부 차관까지 지낸 그가 공기업인 한국중공업 사장으로 옮겼을 때만 해도 공무원 특유의 투박함이 묻어났었다. 그러나 짧은 기간에 부실이 많던 공기업을 정상 궤도에 올려 놓자 그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다. 회사를 데이콤으로 옮긴 뒤에도 그의 뛰어난 경영능력은 여지 없이 발휘됐다. 그 결과가 대기업 회장이라는 타이틀로 나타난 셈이다. 공무원이 권력과 이권의 중심이던 시절에는 정권교체 시기를 제외하고 제 발로 기업을 찾아가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그러나 90년대 중반부터 기업행을 꿈꾸는 공무원들이 적지 않다. 삼성자동차 설립을 준비하던 삼성그룹이 94년 공무원 출신을 영입할 때 한 면접자는 "산자부 출신만 40여명이 몰려 알 만한 얼굴은 다 만날 수 있더라"고 전했다. 공무원 위상이 예전 같지 않은데다 좀처럼 변화하지 않는 공무원 사회에서 꿈을 펴기가 어렵다는게 이직의 가장 큰 이유다.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보수도 민간기업행을 부추긴다. 일단 기업으로 옮기면 10여년차 서기관이나 과장급은 이사나 상무로, 차관보 이상이면 사장 이상 대우를 받는다. 강경식 전 총리는 동부그룹 금융부문 회장이 됐다. 오강현 전 특허청장은 로템을 거쳐 강원랜드 사장이 됐다. 기업 입장에서는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어떻게든 정부와 '끈'을 만들어 놓기 위해 공무원을 스카우트하고는 했다. 지금에 비해 인.허가 절차가 워낙 복잡하고 규제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개인의 능력을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공무원 출신이 많은 곳은 금융계다. 서경석 LG투자증권 사장(행시 9회.재무부 국세심판소 상임심판관), 진영욱 신동아화재 사장(16회.재경원 부이사관), 이수광 동부화재 사장(경제기획원 사무관) 등이 경제부처 출신이다. 정부가 사업권을 쥐고 있던 통신업계에도 공무원 출신 경영자가 많다. 신윤식 하나로통신 사장은 행시 1회로 체신부 차관까지 지내고 91년 민간기업 대표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데이콤 사장을 거치면서 통신업계 원로 경영인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정홍식 텔슨전자 회장(행시 10회)은 정통부 차관을 끝으로 공직을 떠나 2000년 민간 기업인이 됐다. SK텔레콤 CR센터장인 서영길 부사장은 정통부 공보관, 우정국장 등을 지냈다. 지난 99년 말부터 2000년에 걸친 벤처붐 때는 산자부와 정통부에서만 과장급 20여명이 한두 달 사이에 우르르 벤처로 몰려 나갔다. 강순곤 마이크로랩 사장, 박용찬 인터젠 사장, 이우석 코리아e플랫폼 사장이 산자부, 강문석 TG아시아벤처스 사장이 정통부 출신이다. 지금은 기업행을 원하는 공무원이 많아졌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공무원을 데려와야 할 필요성이 줄어들었다. 정부 눈치를 볼 일이 예전처럼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재육성'을 최대 경영목표로 두고 있는 기업들에 공무원들은 여전히 매력있는 인재들이다. 어렵다는 고시를 통과한데다 해외에서 석사까지 취득한 사람들이 많다. 그들 나름대로의 인적 네트워크가 민간기업이 탐낼 만한 것인데다 기업에서만 커온 사람들이 갖기 어려운 거시적인 안목도 공무원의 장점이다. 삼성그룹은 95년 이후 홍순직 삼성SDI 부사장(통상산업부 과장), 장일형 삼성전자 홍보팀장(전무.행시 14회.통산부 과장), 주우식 삼성전자 IR팀장(상무.24회.재경부 과장)을 잇따라 영입했다. LG그룹에서는 정영의 전 재무부 장관(고등고시 행정과 13회)이 지난 95년 LG투자증권을 거쳐 LG경영개발원 회장으로 옮겼고, 박종호 LG전자 금융팀장(상무)은 99년 영입 영입됐다. 정작 공무원들은 이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대부분의 공무원은 이직 자부심에 차있지만 답답한 현실에 부딪칠때마다 기업행을 택한 선후배들을 부러워한다.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떠나는 사람을 환영하는 분위기도 있다. 통산부 출신인 대한상공회의소 김효성 부회장은 "경제부처와 기업간 교류가 활발해진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공무원의 기업행은 자리를 잡고 있으나 기업인의 정부행은 거의 찾아 볼수 없다는게 문제라는 지적이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