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낮 12시10분.김동태 농림부 장관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농림부 업무 보고를 마친 담당자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보고가 별 탈 없이 일사천리로 1시간여 만에 끝났다는 낭보였다. 비정규직 임금문제를 놓고 노동부가 인수위의 호통(?)을 들은 직후여서 농림부는 바짝 긴장하고 있던 터였다. 신경이 많이 쓰였는지 김 장관은 이날 오전 과천 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도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내건 공약과 농림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이 잘 들어맞는다"고 강조했다. 사실 농림부는 며칠전 인수위가 흘린 "은퇴 농민들에게 연금을 지급하는 정책을 검토하겠다"는 등 '농민보호 및 지원사인'에 맞춰 이날 보고에서도 "향후 세계무역기구(WTO) 농업 협상에서 국내 농가 피해를 줄이기 위해 쌀 관세화를 보류하는 협상전략을 짜겠다"고 밝히는 등 인수위가 좋아할 메뉴로 짰다. 농림부가 그동안 줄곧 강조해온 "농업국인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FTA)체결 등 통상정책기조의 변화와 농산물 수출국의 강경한 태도 등 안팎의 상황에 비추어 쌀관세화 보류가 안되는 경우를 감안해 농업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한다"는 식의 대책은 실종돼 버렸다. 이처럼 농림부는 인수위가 듣고 싶어할 것 같은 내용만 추려 보고했고 인수위는 '폼나는 일'에만 신경을 쓰는 것처럼 비쳐졌다. 이를테면 골치 아픈 추곡수매가 문제에 대해 인수위는 "차기 정부가 관여할 사항이 아니므로 빨리 매듭지으라"고 주문했다. 또 한·칠레 FTA와 관련,"피해 농민지원을 위한 특별법을 국회비준 전이라도 추진하라"고 했지만 정작 문제의 핵심인 FTA의 국회비준에 대해선 보고하는 농림부나 보고 받는 인수위측이나 별다른 언급 없이 넘어갔다. 문제는 정부부처와 인수위가 매끄럽게 업무보고를 끝냈지만 우리 경제 기조에 큰 영향을 미치는 난제들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있다는 데 있다. 핵심현안을 놓고 심각한 고민은커녕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식으로 슬쩍 우회한 업무보고는 실망스럽다. '제대로 된 개혁'을 하겠다는 차기 정부의 브레인들로 구성된 인수위여서 더욱 그렇다. 임상택 사회부 기자 lim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