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기자실은 비교적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이지만 나름대로 암묵적인 서열이 있다. 신문이나 방송 통신 등 주요 매체 기자들과 오랜 경력을 가진 베테랑 기자들이 맨 앞줄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우리와는 달리 백악관을 수십년 간 취재하는 기자들이 많은데 특히 백발이 성성한 원로기자들이 입장할 때면 동료기자들은 일어나 경의를 표하기도 한다. 백악관의 최고령 출입기자였던 사라 매클렌던(Sarah McClendon·92)이 엊그제 사망했다는 소식이다. 1940년대부터 백악관 취재를 시작했으니 무려 50년 이상을 출입한 셈이다. 그녀가 겪은 대통령만도 프랭클린 루스벨트에서 현 조지 W 부시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12명이나 된다. 얼마전까지도 매클렌던은 워싱턴포스트지에 주 1회 칼럼을 쓰면서 대통령을 비롯한 권부를 향해 필봉을 휘둘렀다. 몸소 체험한 대통령들의 예를 들어가며 정책을 비판할 때는 많은 독자들이 후련한 느낌을 가지곤 했다. 매클렌던은 회견 도중 마치 고함 치듯 도전적으로 질문을 하는 기자로도 유명한데,이 같은 스타일은 젊은 무명시절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불가피했다고 후일 털어놓기도 했다. 연륜만큼이나 역대 대통령들과의 에피소드도 부지기수이다. 케네디 대통령은 국무부에 관련된 예민한 질문을 받고 매클렌던을 공개적으로 비난했지만 솔직히 그녀의 직업정신에 반했다고 실토했다. 닉슨 대통령은 그녀가 월남전 참전용사들의 실상을 폭로한 뒤 관련법의 재가를 서둘렀다고 한다. 클린턴 대통령은 "그녀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데 무슨 말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그녀의 기자정신을 치켜세우기도 했다. 매클렌던은 생전 '대통령님 대통령님'(96년)과 '나의 여덟 대통령들'(77년)이라는 두 권의 책을 썼는데 "국민과 공공을 위한 기자로서 자신의 삶은 특권이었다"고 말했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 역시 그녀의 기자정신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듯 하다. "나는 결코 앉지 않고 예리한 질문만을 생각한다. 그것이야말로 본질에 접근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