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드라마를 시청하노라면 종종 화면 오른쪽 위에 '15'나 '19'라는 숫자가 뜬다. 방송프로그램 등급제에 따른 표시다. 15가 뜨면 만15세,19가 뜨면 만19세 이상이라야 볼수 있다는 뜻이다. 프로그램 등급제는 다매체·다채널시대를 맞아 방송사간 시청률 경쟁이 고조되면서 선정ㆍ폭력 정도가 심해지자 생겨난 것이다. TV가 도덕교과서가 아닌 만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쪽과 그래도 유해한 프로그램으로부터 미성년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쪽의 절충안인 셈이다. 2001년 2월 영화 수입드라마 뮤직비디오 애니메이션 등에 대해 실시됐고 지난해 5월부터 국내 드라마에까지 확대됐다. 문제는 실효 여부다. '15'를 띄운 드라마의 경우 어른이 봐도 민망하고 겁나는 장면이 허다하다. 남자의 무릎 위에 앉아 치마를 걷어올리는가(SBS '별을 쏘다') 하면 주먹질과 각목은 예사요,칼싸움(SBS '대망')에 총질(MBC '삼총사')까지 난무한다. 물론 미디어의 선정ㆍ폭력성이 청소년 행동에 미치는 영향은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은 사안이다. 상관관계는 몰라도 인과관계는 쉽사리 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뜩이나 찌르고 죽이는 게임과 인터넷포르노물에 무방비로 노출된 청소년들에게 드라마까지 야하고 치고 박는 장면 일색으로 만들면서 등급표시만 하면 된다는 발상은 안이하고 무책임해 보인다. 부모의 시청지도가 필요하다지만 TV드라마에서 아이들을 떼놓을 도리는 거의 없다. 15가 떴으니 중학생은 안되고,19가 떴으니 고등학생은 안된다고도 하기 어렵다. 방송위의 조사 결과 자녀가 등급외 프로그램을 볼 때 '상관없다'는 답변이 '못보게 하거나''채널을 돌린다'보다 많고,초ㆍ중ㆍ고생 69.5%가 프로그램 등급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도 한다. 때문에 연령보다 내용에 따라 구분하고 알아서 보게 하자는 내용등급제나 일정 프로그램을 차단하는 V칩(Violence chip) 장착을 의무화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하지만 어떤 일도 제도나 장치로 막기는 어렵다.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TV의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한 방송사의 기준과 판단이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