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9년 10월 이후 3년이 넘도록 해외를 떠돌고 있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귀국설이 다시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옛 대우 계열사들이 속속 정상화되고 정권 교체로 정·관계의 '반(反) 대우' 정서도 수그러들 가능성이 엿보이면서 조기 귀국을 점치는 시각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김 전 회장의 한 측근은 이에 대해 "김 전 회장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과 대우그룹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여건"이라며 "현 정부가 그랬던 것처럼 김 전 회장을 외화도피와 같은 파렴치범으로 매도하는 분위기에서는 절대 귀국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3년을 해외에서 보낸 김 전 회장에게 시간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며 "명예회복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김 전 회장이 귀국하지 않고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현 정권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 대우그룹 해체과정에도 모종의 '기획'과 '음모'가 작용했다고 김 전 회장은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 대우 핵심 인사들은 지난 19일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노무현 당선자와 새 정부 인사들의 태도를 '주시'하고 있다. 대우를 국가경제를 망친 주범으로 간주하는 시각이 변화될 지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김 전 회장은 최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억울한 심경의 일단을 밝혔다. 그는 대우 패망의 원인을 "김대중 정권 신흥관료체제와의 근원적인 갈등"으로 분석하면서 "그 사람들을 너무 믿은 것이 실착"이라고 말했다. 또 해외 재산도피 혐의와 관련해서는 "물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가 물을 탐내겠느냐"며 "내가 개인의 영리를 위해 세계경영을 하고 다녔다는 얘기는 한국기업 전체에 대한 모독"이라고 강변했다. 김 전 회장은 유럽과 동남아 등을 오가는 오랫동안의 도피생활에 지친 탓인지 상당히 수척해졌다는 전언이다. 그룹 회장 시절 73㎏을 유지하던 몸무게가 63㎏으로 줄어들었다는 것. 한편 경찰청은 26일 분식회계와 경영비리 연루혐의로 기소중지된 김 전 회장이 11월16일 태국에 입국한데 이어 다시 지난 1일 이탈리아 로마로 출국한 사실을 확인,유럽지역 인터폴에 소재확인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경찰청 관계자는 "김 전 회장이 로마로 출국했지만 로마 역시 통상 다른 나라로 가기 위한 항공 경유지였을 것"이라며 "그가 어느 지역에 머물고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이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외화도피 혐의도 그에게 이롭지 않은 상황이다. 대우 부실관련 임직원들이 지난달 법원으로부터 국내자금 해외유출 및 불법 외환거래 혐의에 대해 24조3천5백88억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았기 때문이다. 결국 김 전 회장의 귀국시기는 그에 대한 정치권과 국민들의 재평가 작업이 어느 정도 이뤄지느냐에 달려있다는 지적이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