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사람이다'라는 말을 흔히 한다. 그런데 이 말은 국내에서 일하는 것보다 해외에서 일하는 경우 더 실감이 가는 말이다. 왜냐하면 국내에서는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보조 시스템이 있으나 그런 시스템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외국에 나가면 본사에서 파견된 인력들의 개인 역량이 사업의 성패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사에서는 나름대로 우수한 업무 능력과 언어 능력을 갖춘 직원을 선발해 파견하지만,그중 의외로 많은 직원들이 기대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실패하거나 중도하차하는 경우가 생긴다. 왜 그럴까. 이 질문의 답을 얻고자 여러 연구가 이루어졌다. 그 중 몇년 전 미국 70여개의 다국적기업 인사담당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가 주목을 받고 있다. 그들이 해외파견자들의 성공요인으로 지적한 것들을 선택된 빈도(%)의 순서로 등급을 매기면 첫째 이문화 적응 능력(35%), 둘째 업무 능력(22%), 셋째 가정의 안정성(12%) 순이었다. 특기할 만한 것은 '언어 능력이 중요하다'고 응답한 사람은 5% 미만으로,거의 중요하지 않은 요인으로 나타난 점이다. 이 결과에서 중요한 것은 △이문화 적응 능력이 업무 능력보다 중요한 변수라는 점 △해외파견자 자신 뿐만 아니라 그 가정의 안정도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그리고 △언어 능력이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게 나왔다는 점이다. 해외파견자들에게 '언어능력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의외의 결과는 미국인들의 경우 해외에서도 영어를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요인보다 언어를 알아도 이문화 적응에 실패하면 결국 맡겨진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확률이 높은 까닭이다. 우리나라 한 대기업의 인사담당자와 인터뷰한 결과를 보면,중국에서 일할 직원으로 소위 명문대학을 나왔고 중국어에 능통한 직원을 선발해 파견했으나 실패했다. 반면 중국어는 능통하지 않지만 그곳 문화에 적응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중국사람들과 잘 사귀는 직원은 성공한 사례가 있었다. 이는 해외 근무자의 성공과 실패의 관건은 언어보다 중요한 능력이 '이문화 적응 능력'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경우 해외에 보낼 인력을 선정할 때 이 같은 세 가지 사항을 철저하게 검증하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언어 능력과 업무 능력의 두 가지 요건만 보고 사원을 선발한다. 그러나 연구 결과와 사례에서 알 수 있 듯 언어 능력보다 중요한 것이 이문화 적응 능력인데,이를 간과한 채 인력을 선발하면,시작부터 잘못되는 결과가 될 것이다. 또 해외 파견직원의 가정에 대한 배려가 별로 없는 것도 실패의 요소가 될 수 있다. 간혹 해외 근무를 원하는 사람 중에는 가정생활이 불안정해 해외로 환경을 바꿔보면 좋아지지 않을까 하고 지원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해외에 나가면 이문화 적응으로 인한 스트레스 증가로 가족 관계의 균열이 더 커지고 깊어지는 경우가 많다. '국제화'를 21세기의 비전과 전략으로 삼고 있는 우리나라 기업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회사를 방문해 보면 벽에 걸린 사훈 중에 '국제화'가 없는 기업이 드물다. 그러나 액자 속의 슬로건이나 막연한 구호가 기업을 국제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기업은 사람이다'라는 말이 시사하 듯 전문 국제인력의 확보없이 국제화를 외치는 것은 공허한 슬로건에 불과하다. 국제인력의 성공과 실패 요인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으면,선발하는 과정부터 부적절하고 불완전한 기준에 의해 이루어진다. 또 그들을 위한 준비와 연수과정이 있다 하더라도 겉모양만 갖추었을 뿐 실제로는 도움이 별로 안되는 피상적인 교육에 그칠 수가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해외로 파견된 인력이 실패할 경우 1차 책임은 당연히 그 기업에 있다. 인력관리가 잘못되어 있으면서 해외 파견자들의 실패를 당사자에게 돌리는 기업은 '기업은 사람이다'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공허한 국제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snam@business.uvic.ca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