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재산권이 국제무역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개발도상국가들은 지식재산권 보호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필요한 의약품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약품 공급도 제때 이뤄지지 못한다며 아우성이다. 스위스 제네바의 세계무역기구(WTO) 건물 앞에서는 의약품 특허권 폐지를 주장하는 시위가 연일 벌어지고 있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을 비롯한 거의 모든 국가들이 지식재산권 보호의 필요성을 전적으로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때문에 발명품이나 문예 창작품, 음악 등 다양한 종류의 지식 재산이 본격적으로 법률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됐다. 그 당시 각국 정부는 지식재산권을 철저히 보호할수록 돌아오는 혜택이 많아질 것이란 점을 인정했다. 지식재산권이 보호되면 국가간 무역이 한층 활발히 이뤄지고 외국인 투자도 더욱 늘어날 것으로 기대했다. 기업가 정신과 신제품 개발에도 도움이 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지식재산권에 대한 시각이 크게 바뀌고 있다. 특허권을 인정 받은 의약품은 일반적으로 높은 가격에 팔리기 때문에 이를 구입할 능력이 없는 국가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특히 지난 3년 간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이같은 분위기는 고조됐다. 일부 국가에서는 의약품 개발을 이유로 의도적으로 지식재산권 보호 자체를 포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지식재산권 보호에 앞장 서 왔던 미국마저 흔들리는 모습이다. 그러나 원칙을 지켜야 한다. 지식재산권은 경제적 문제다. 다른 나라와의 정치적 협상대상으로 여겨서는 안된다. 의약품에 대한 특허권이 허물어지면 다른 산업에도 그 파장을 미쳐 신기술을 개발하려는 인센티브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게 된다. 물론 가난한 사람들에게 의약품을 제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아프리카 남부 사하라 지역에서는 에이즈는 물론 말라리아 결핵 등과 같은 전염병이 확산돼 의약품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단순히 지식재산권을 포기하도록 유도한다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해결책을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지식재산권 보호가 경제 발전에 도움을 줬던 사례를 널리 알려야 한다. 요르단이 좋은 예다. 요르단은 지난 99년 WTO에 가입하면서 자국 제약업계에 대한 피해가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외국 제약업체의 특허권을 최대한 존중하고 보호했다. 그 결과 외국 제약업체들은 요르단에 대한 투자를 늘렸으며, 기술이전도 적극적으로 실시했다. 외국 기업들과 자연스럽게 경쟁을 하다보니 요르단의 제약업체들도 자생력을 키우게 됐다. 이제 요르단 제약업계는 선진국에서 특허권을 따내는 수준으로까지 발전했다. 의약품 수출은 99년부터 2001년까지 3년 동안 25% 증가했다. 특허권 보호가 철저히 이뤄지고 있지만, 의약품 판매가격이 크게 인상되지는 않았다. 요르단의 사례는 지식재산권 보호를 강화함으로써 한 국가가 어떻게 관련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지식재산권은 분명히 많은 혜택을 가져온다. 지식재산권이 보호되는 체제 속에서만 신기술 개발이 성공을 거둘 수 있다. 정리=유영석 기자 yooys@hankyung.com ----------------------------------------------------------------- ◇ 이 글은 스튜어트 아이젠스타트 전 미국 재무차관이 파이낸셜타임스 최근호에 기고한 'Protecting drug patents brings real benefits'란 칼럼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