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월드컵 대회에서 붉은 악마들이 보여준 여러 가지 캐치 중에 '변방에서 중심으로'라는 것이 있었다. 물론 이것은 우리나라 축구가 세계적인 축구로 발돋움한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었지만 또한 이것은 21세기를 맞은 우리나라 문화예술이 나아갈 궁극적 목표다. 세계 예술의 중심이 되기 위해 우리나라 문화와 예술은 두 가지 점을 이뤄야 할 것이다. 첫째는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보편적 가치(글로벌 스탠더드)를 우리 것으로 하는 일이다. 상식 민주주의 합리적정신 투명성 창의력 자발성 등의 가치가 부도덕 권위주의 미신 하향평준화 노예근성 등을 대체해야 한다. 히딩크는 보편적 가치가 우리와 성공적으로 결합할 수 있음을 보여준 예이다. 둘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고유한 문화적 개성(로컬 아이덴티티)을 견지하는 일이다. 이것이 없이는 우리의 삶은 그 구심점을 잃을 것이요, 구심점이 없는 문화는 다시 다른 문화의 변방으로 흡수되고 만다. 다행히 우리는 한 세기 동안 세계의 변방으로서 많은 고통과 수모를 겪었지만 수천년 동안 갈고 닦여진 문화의 전통을 아직도 잘 간직하고 있다. 지난 세기의 고통과 배움을 통해 우리나라의 문화예술도 많은 발전을 이룩했다. 무엇보다도 문화예술의 생산이 활발해졌다. 예술분야만 본다 하더라도 예술을 공부하는 학생과 학교의 숫자, 문화회관 예술회관 미술관의 숫자와 거기에 달린 전속기관들의 숫자, CD 시장의 규모, 하루에 열리는 공연물의 양 등을 보면 그렇다. 또 외국에 가 보면 정말 많은 한국학생들이 그곳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이러한 양적 팽창에 대해서 염려하는 시각이 적지 않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상품생산에 비유한다면 우선 제조업 자체가 활발해야 질적인 향상도 이루어질 수 있는 것과 같다. 세계 예술의 각종 콩쿠르에서 우리 예술가들이 빈번하게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거나 동아시아 지역에 불고 있는 한류의 열풍 등은 실제로 우리나라의 예술이 질적인 성취까지 이루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것은 결코 손쉽게 우연히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부터 세계 문화예술의 중심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단기적으로는 다음 두 가지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돼 이를 새로운 정부가 고려해 주었으면 한다. 첫째는 우리나라 예술 및 예술가를 수출할 수 있는 시스템을 연구 구축하는 일이다. 예술가들은 취직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스스로 하는 활동이 일인 사람들이다. 즉 전람회나 음악회 같은 활동을 통해서 돈도 벌고 커리어를 쌓아간다. 그러기 위해서는 1년에 한두번 하는 전람회나 음악회로는 안된다. 전업으로 해야 한다. 전업이라는 것은 한두번 취미 삼아서 하는 일이 아니라, 1년 열두달 종사하는 일이다. 그러기에는 우리나라의 시장이 너무 좁다. 이러한 예술가들을 수출해서 필요한 곳에 배급하는 일이 시급한데, 예술가 스스로는 이러한 일을 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 국제적 예술마케팅기술이 필요하다. 둘째는 젊은 예술가들이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기량을 키워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예술을 공부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세계적으로 예술을 기피하는 추세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이것이 우리의 강점이다. 그런데 세계화에 따른 경영중시 풍조는 직접적인 이익이 되지 않는 일에는 관심을 두지 못하게 한다. 따라서 아직 이름을 내지 못하는 장래의 예술가들은 오히려 옛날보다 더 어려운 조건 가운데서 자신의 길을 찾아 나가야 한다. 이 젊은 예술가들이 좌절하지 않고 하나의 예술가로 활동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환경을 만들어 주는 일은 이제 국가적으로 맡아서 해결할 일이 됐다. 우리나라에 아직 이러한 젊은이들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얼마나 든든한 자원인가? 이 가능성을 제대로 발전시켜 나간다면 우리나라가 세계 예술의 중심이 되는 날은 멀지 않을 것이다. 李建鏞 <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leegy@knu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