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 테레사(1910∼97)는 유고슬라비아에서 태어났다. 29년 아일랜드 로레토수도원 소속으로 인도 성마리아여학교에 부임했으나 48년 그만두고 빈민구제에 나섰다. 52년 '죽어가는 사람의 집'(칼리가트)을 만든 데 이어 '버려진 아이들의 집'(시슈 브하반) '나환자의 집'(샨티 나가르) 등을 열었다. 그는 일생을 이처럼 가난한 자,의지할 곳 없이 죽어가는 자,한센씨병 환자 사이에서 그들과 다름없이 빈곤하게 지냈다. 가난한 사람처럼 살지 않으면서 그들을 이해할 수는 없다는 주장이었다. 여기저기 수선한 옷 세벌과 낡은 신발,십자가와 묵주가 그가 가진 전부였다. 여름엔 시멘트바닥,겨울엔 거기에 얇은 천 하나 깔고 지내면서 환자와 장애아를 돌보는 그에게 누군가 돈과 지위를 갖고 편안하게 사는 사람들이 부럽지 않느냐고 묻자 대답은 간단했다. "허리를 굽히고 섬기는 사람에겐 위를 쳐다볼 시간이 없답니다." 그를 만난 사람들이 모두 '거친 손에 터진 발,주름투성이의 자그마한 할머니'로 기억하는 것도 무리가 아닌 셈이다. 죽어가는 사람을 돌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물음에 대해 "자신이 버려진 존재가 아니고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하기 위해"라고 답했던 그는 또 자신의 사후에 어떤 기금도 조성하지 말도록 당부,콜카타 주민들이 돈을 모아 동상을 세우고 상(償)을 제정하려던 것을 막았다. 로마 교황청이 마더 테레사 사후 1년 뒤에 일어난 기적을 인정,성인의 전 단계인 복자(福者) 반열에 올리는 시복(諡福)절차를 밟는다는 소식이다. 이후 두번째 기적이 일어나면 성인으로 선포하게 된다고 한다. 시복이나 시성같은 형식보다 중요한 건 사랑을 말이 아닌 몸으로 실천한 그의 정신을 잇는 일일 것이다. 성탄절 전야,테레사 수녀의 말이 그 어떤 구호보다 크게 들리는 건 그 때문이다. "나는 한번에 한사람만 껴안을 수 있다.모든 노력은 바다에 붓는 물 한방울과 같지만 붓지 않으면 바다는 그만큼 줄어든다.당신이나 가족,교회도 마찬가지다.그저 시작하면 된다.한번에 한 사람씩."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