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일 "페멕스(PEMAX) 프로젝트"의 현안해결을 위해 멕시코를 방문중이었다. 12억달러짜리 석유화학 플랜트 건설을 위해 발주처 관계자들과 "CEO 미팅"을 마치고 멕시코시티의 한 호텔로 돌와왔다. 대형공사인지라 신경쓸 일이 많았고 먼 거리의 여행을 한 탓인지 심신은 극도로 피곤한 상태였다. 객실에 들어서자 아무 생각없이 TV를 켰다. 멍하니 TV를 보며 몸과 마음을 추스릴 생각이었다. 그러나 웬걸. 화면에는 사고소식이 급박하게 터져나왔다. 쿠웨이트 원유시설에서 대규모 화재가 발생했다는 뉴스였다. 쿠웨이트 국영석유회사(KOC)의 제15 집유센터와 1백30 가압기 지역에서 폭발사고가 났다. 당시 SK건설은 쿠웨이트 석유화학단지에서 플랜트 복구 공사를 진행중이었는데 화재현장이 바로 인근이 아닌가. 정신이 바짝 들었다. 석유화학단지는 그 특성상 한 공장이 폭발하면 인근 공장으로 불길이 옮아붙곤 한다. 혹시라도 SK의 플랜트 복구 현장까지 화마가 덮쳐오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급한 마음에 연락을 시도했다. 쿠웨이트 지사와 현장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봤지만 연결이 쉽지 않았다. 그날은 바로 중동지역의 휴일인 금요일이 아닌가. 어렵사리 현장 직원이 전화를 받았지만,그는 사장이 누군지도 잘모르는 현지 채용인이었다. 사태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듯 했다. 입술이 바짝 말랐다. 무엇보다도 20여명의 한국인 직원들의 안위가 궁금했다. 혹시라도 근처를 지나다 날벼락을 맞은 직원이 없지는 않을까. 현장을 지키겠다고 무리하다 사고가 나지는 않을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지난 70년대부터 그룹 계열사인 SK(주)의 플랜트 복구 공사를 진행하면서 쌓인 노하우를 바탕으로 쿠웨이트에 진출했었다. 당시에도 석유화학 플랜트 하나에서 화재사고가 나서 1억달러가 넘는 복구공사를 진행하던 중이었다. 한번 사고가 난 유화단지이니만치 또 다시 사고가 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첫 사고 이후 모든 공장들이 안전점검을 강화했으리라 믿었는데 안이한 기대에 불과했던 것이다. 급한 마음에 다음날 멕시코 일을 대충 정리하고 쿠웨이트로 날아갔다. 다행히 SK 복구공사 현장이나 직원들의 신변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나름대로 안전대책을 세워둔 덕분이었다. 가슴을 쓸어 내릴수 있었다. 순간 새로운 비지니스 생각이 떠올랐다. 이번 사고의 복구도 SK건설이 맡아보자는 것이었다. 서둘러 KOC 부회장을 만났다. 화재사고에 대한 깊은 위로의 뜻을 전하며 복구대책에 대해 조언을 해줬다. 또 현재 진행중인 플랜트 복구공사의 현황을 설명하면서 이번 사고도 맡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한편으로 보험사의 손해사정인의 행방을 수소문하는등 수주작업을 서둘렀다. 복구공사 수주는 손해사정인으로부터 피해규모와 보상금액을 산출하는 용역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쿠웨이트 시내 호텔 모두를 뒤지는 소동 끝에 미국인 손해사정인을 찾아냈다. KOC측에 사흘뒤 20여명의 기술진을 현장에 급파해서 최단기간내 피해조사와 보상금액 산출을 완료하겠다고 약속했다. 사고당사자와 손해사정인이 모두 신속한 대응에 깜짝 놀라고 또 고마워했다. 덕분에 2억5천만달러짜리 플랜트 복구공사를 또 따낼수 있었다. CEO가 직원들의 안위를 걱정하며 직접 사고현장을 찾아다니는게 사업에도 커다란 도움이 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정리=정태웅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