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zzang0815@hanmail 나는 아직도 사랑이라는 말을 들으면 가슴이 팔딱거리고 양 볼이 붉어진다. 게다가 사랑에는 서투르기 짝이 없어 잠깐 행복하고 오래 상처 입는다. 내 사랑을 그릇에 비유한다면 항상 몇 박자 느린 무쇠 솥이다. 그러기에 상대방은 이미 펄펄 끓어서,끓다가 넘쳐버려 그 사랑을 포기하고 돌아서 버리면 난 그때부터 끓기 시작한다. 그래서 늘 핀트가 맞지 않은 상사 꽃처럼 저 홀로 피었다가 저 홀로 시들기에 독한 열병을 앓는다. 어느 시인은 목숨 건 사랑이라면 불륜이라도 아름답다 했지만,나는 세상에 목숨 걸고 사랑할 만큼 나를 아찔하게 만든 사람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 그저 계절이 바뀌듯 자연스럽게,실비에 옷 젖듯 알 듯 모르게 다가오는 것을 사랑이라 믿으며 생의 반을 살았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한 사람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사랑한다는 건 어쩌면 '사랑'이라는 추상명사처럼 지독하게 추상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굳이 이 세상에서 사랑이라는 이름의 관을 아깝지 않게 씌워 줄 생명을 하나 선택하라면 그건 오초도 생각할 필요 없이 내겐 내 아들이다. 하지만 어미가 새끼를 사랑하는 본능적인 사랑이야 다 비슷한 질량을 가지고 있겠지만,한 여자가 한 남자를 사모하는 연정은 사람들 모습이 다르듯 그 사랑 법 또한 각양각색이다. 찻집에서 낯선 커피 이름들을 바라보며 고민하듯 진정 내가 찾는 사랑은 무엇일까. 어떤 빛깔과 어떤 향을 지니고 있을까. 킬리만자로 블루마운틴 헤이즐넛 카푸치노….마시는 사람의 입 속에서 그 사람의 일부가 되듯 나도 누군가의 취향에 맞는 맛과 향을 지닌 한 잔의 커피가 될 수 있을까. 때론 내 입 속에서 가장 황홀한 맛과 향을 내며 내 코와 입을 즐겁게 해 줄 수 있는 헤이즐넛 같은,카푸치노 같은 사랑을 꿈꾼다. 아직은. 가끔은 낯선 곳에서 하룻밤의 여행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낯선 이름의 커피를 마셔보지만, 이내 후회한다. 왜 설렘은 편안함을 이기지 못 할까. 왜 불혹의 사랑은 도덕과 함께 양팔저울에 얹어 무게를 잰다면 항상 도덕 쪽으로 기울까. 나는 오늘도 내가 즐겨 마시는 헤이즐넛을 마주하고 사랑과 도덕의 무게를 단다. 수평이다. 팽팽하게 맞서는 두 가지 향을 다 가진 사람이 그립다. 그와 늘 함께 있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