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들은 지난 주말 광화문 촛불시위를 '반미의 촛불바다가 미 대사관을 삼켰다'고 보도했다. "한때 급진적인 대학생들에게 한정됐던 반미 감정이 중산층 등 주류 한국인들에게 번졌다"는 분석도 덧붙였다. 두 여중생이 미군 궤도차량에 깔려 숨진 이후 6개월이 넘도록 이어지고 있는 전국 각지의 항의시위를 보는 시각은 갖가지다. 그것을 외국인들이 보는 것처럼 '반미'라는 하나의 단어로 획일적으로 규정짓는 것은 결코 적절하지 않다. 촛불시위 참여자의 상당수가 초·중등학생이었다는 점만으로도 그렇게 볼 수 있다. 대선이 없었다면 두 여중생 사망이후 상황전개가 어떻게 됐을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직적으로 반미감정이 확산되고 있다"는 서청원 한나라당 대표의 발언에 대해서는 적잖은 네티즌들이 시민운동의 순수성을 왜곡하는 발언이라며 항의메일을 쏟아놓았다는 보도지만,현실적으로 두 여중생 추모시위가 특정후보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두 여중생의 참혹한 죽음과 서해 교전은 월드컵으로 들떠있던 무렵에 일어났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근본적으로 분단의 비극이 빚어낸 사건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두 사건에 대한 사회의 '반응'이 극명하게 대조를 이뤘다는 점 또한 분명하다. 바로 그런 관점에서 우리 사회의 문제의식에 균형감이 결여돼 있다는 지적도 나올 수 있고,'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억측도 있을 수 있다. 촛불시위에 앞서 있었던 시청앞 집회장 주변에는 맥아더의 미군정 포고문,제네바합의는 미국이 어겼다는 주장을 담은 해설판 등 여중생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것들도 적잖이 눈에 띄었다. 피해자 유족에게 지급된 배상금(1억9천만원)이 60만원에 그쳤다는 그림 등 사실 확인에 문제가 있는 집회준비물들도 있었다. 여러 시민단체에서 제각기 준비를 하다 보니 빚어진 일인지 모르지만,보기에 따라서는 불필요한 오해를 살 여지가 없지 않다. 특정 대선후보를 비방하는 유인물이 나돌기도 했기 때문에 대선과 무관하지 않은 집회라는 억측 또한 나올 수 있는 측면이 있었다. 5만명이 모인 대규모 집회가 전혀 불상사 없이 평온하게 시종했다는 것은 성숙된 시민의식을 보여준 것이라는데 이론(異論)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앞으로 계속 촛불시위가 이어지는 것이 과연 국익을 위해 바람직한 일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SOFA 개정문제가 반미로 이어질까 봐 시위 자제를 요청하고 나선 경제5단체의 우려를 간과해선 안된다. 시위 참가자 중에는 "국민의 자존심보다 더 중요한 국익이 어디 있느냐"고 말하는 이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성숙되고 책임 있는 시민이라면 이제 좀더 냉정하게 사리를 따져봐야 할 때가 됐다. 앞으로 남은 과제인 SOFA 개정(개선)은 정부에 맡겨야 할 일이다. 우리 국군이 다른 나라에 주둔하더라도 '공무상 범죄'의 재판관할권은 우리가 행사한다는 예비역 대령연합회의 지적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 미군범죄 재판관할권을 전면 이양하라거나,부시의 사과가 미흡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촛불시위를 계속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문제가 있다. 주한 미군이 미국의 이익과 우리의 필요가 함께 했기 때문에 나온 것이라면 재판관할권 문제는 좀더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우리 사법제도에 대한 믿음을 높이는 일은 재판관할권과 전혀 무관한 사안 같지만 그렇지 않다. 형사피의자가 고문으로 숨지는 나라,우리말을 못해 의사소통이 안되는 사소한 외국범죄자를 정신병원으로 보내 몇년간이나 감금했던 선례가 시정되지 않는다면 SOFA는 개정은 커녕 개선의 폭도 미미할 수밖에 없다. 경수로 건설현장에 나가 있는 우리 기술자에 대한 재판관할권을 북한이 아니라 우리가 갖고 있다는 점도 SOFA 문제와 관련,알아둬야 할 일이다. 50년 전 전쟁때 숨진 미군 시신이라도 찾기 위해 지금도 최선을 다하는 미국정부의 자세는 높이 평가할 일이지만,그것이 SOFA 개정협상에 장애가 될것 또한 분명하다. 우리 사법제도도 보완하며 시간을 갖고 다각적으로 대처하는 방법 외에 달리 길이 없다. 국익이 무엇인지 현실감을 갖고 생각해야 한다.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