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5월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 휘하의 일본 연합함대가 대한해협에서 천하무적이라는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궤멸시켰을 때 세계는 깜짝 놀랐다. 일본의 이런 해군력은 태평양전쟁 초기 다시 그 위용을 드러냈다. 41년 12월8일 진주만을 기습,미국 함대를 대파한데 이어 42년 2월 자바섬 앞에선 연합군 기함인 네덜란드의 드루이터호를 침몰시키는 대승을 거뒀고, 4월엔 실론 남방에서 영국의 2만t급 항공모함 헤르메스를 수장시켰다. 42년 6월 미드웨이 해전참패를 두고 영국의 저널리스트 존 포터는 16세기 조선의 이순신 장군에게 진 뒤 일본해군의 첫 패전이라고 했을 정도다. 미드웨이 패배 뒤에도 일본해군은 막강했다. 연합군이 필리핀 탈환을 위해 벌인 레이테해전 당시 일본군이 판단착오로 후퇴하지 않고 거함 야마토의 46㎝짜리 포를 발사했으면 맥아더 장군의 아쓰키비행장 상륙은 없었을 것이라고도 한다. 지금도 일본 해상자위대 사령부가 있는 요코스카(橫須賀)해군기지엔 온갖 최신형 군함이 즐비하다. 게다가 93년 미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1만t급 호위함 콘고에 이지스시스템을 탑재한 뒤 현재 자그마치 4척의 이지스함을 보유하고 있다. 이지스(Aegisㆍ방패)함은 건조비가 1조6천억원 이상 든다는 최첨단 군함이다. 명칭도 태평양전쟁 때 사용된 전함과 순양함 이름을 본따 기리시마,콘고,조가이,묘코로 붙였다. 이 가운데 하나인 '기리시마'(7천2백50t)가 아라비아해로 출항했다는 소식이다. 기리시마는 고성능 레이더를 통해 2백개 이상의 목표를 포착하고 10개의 미사일을 동시에 발사할 수 있다고 한다. "미군의 직접적인 무력행사로 이어지는 정보교환은 하지 않을 것" 이라지만 이미 일본은 95년 '신방위대강'을 통해 자위대의 장비 현대화에 박차를 가하고 부대 구조도 개편했다. 주변사태법이 통과된 99년부터는 아예 한반도 유사시를 상정한 갖가지 훈련도 벌인다. 전쟁을 일으킬 수 없도록 규정한 '평화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커지는 마당이다. 주의깊게 지켜볼 움직임이 아닐수 없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