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아직도 부동층이 상당수 남아있고,또 지지율이 유동적인 만큼 대선 후보들로서는 피말리기 경쟁과 같은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일반 유권자들로서는 더없이 느긋한 상황이다. 멋진 신랑후보들의 열띤 구애의 대상이 돼 있는 아가씨의 입장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유권자들이 계속해서 공주나 왕비의 대접을 받을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생각해보면 선거민주주의에서 가장 커다란 역설은 '이기는 것'과 '통치하는 것'의 논리와 역동성이 다르다는 데 있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기 어렵다. 많은 유권자 혹은 일부의 유권자라도 무엇을 원하고 있는 지,그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고 확신한다면,어떠한 약속도,공약도 마다하지 않는다. 또 그것이 다른 유권자들에게 혹은 납세자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 개의치 않는다. 물론 '부정부패를 없애겠다' '왜곡된 인사정책과 관행을 바로 잡겠다' 혹은 '지역주의를 없애겠다'는 공약은 돈이 드는 공약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유력한 대선 후보들이 내걸고 있는 공약을 실현하려면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이 돈은 모조리 납세자의 주머니에서 나오게 된다. 오늘날 흥부에게 부를 안겨다 준 박씨를 물어다 준 제비를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실상 대선 후보들이 과잉공약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른바 '재정적 환상'에 함몰되기 때문이다. '재정적 환상'이란 정책으로 인한 혜택을 과대평가하고 소요되는 예산을 과소평가하려는 경향이다. 가뜩이나 수많은 공적자금이 들어가 국가빚이 엄청난 상황에서 '재정적 환상'에 빠진다는 것은 여간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어려운 일이다. 또 민주선거란 개인 후보자와 또 다른 개인 후보자끼리 맞붙는 경쟁이 아니다. 즉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와 같은 것이 아니다. 미스코리아에 출전한 후보들은 모두가 개인 자격이다. 그러나 대선 후보는 정당후보다. 흥미로운 것은 오늘날 유력한 정당후보들이 마치 무소속 후보처럼 행동하고 있고,자신의 정당 정체성을 드러내놓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나 민주주의 정치란 곧 정당정치가 아닐 수 없다. 정치나 정책이란 한두 사람의 소신과 가치관, 혹은 선의에 의해서 구축되고 실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각 후보는 정당의 대표주자들인 셈이다. 따라서 이회창 후보도 한나라당과 과거 신한국당의 정체성을 이어받고 있음을 분명히 해야 하며,노무현 후보도 '국민후보'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새천년 민주당 후보임을 분명히 밝히며 유권자들에게 표를 달라고 해야 한다. 경선에 의해서 자신을 뽑아준 당의 정체성을 내세우며 유권자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떳떳한 일이며,우리 한국의 정치발전과 정당정치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회창 후보가 이긴다면,그것은 한나라당이 이기는 것이며,노무현 후보가 이긴다면 그것은 민주당이 이기는 것이다. 결코 개인 이회창,개인 노무현의 승리가 아닌 것이다. 경쟁의 혼돈현상에도 불구하고 승리하기 이전 경쟁의 모습에서 유권자들이 즐길 만한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지금처럼 대선 후보자들이 '만인지상'의 위치가 아니라 '만인지하'의 위치임을 자각하고 있는 때도 없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에게 표를 달라고 간절히 호소하고 있는 지금의 후보자들에게서 제왕처럼 국민 위에서 군림하고 호령하는 듯한 모습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또 내 사람,내편 사람을 쓰겠다며 편중인사를 고집하는 모습을 생각할 수 없다. 또 자기 자신의 아들이나 친인척이 권력형 비리에 연루돼 쇠고랑을 차는 모습이 클로즈업될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은 대선 이전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는지 모른다. 우리가 소망하는 것은 대선 뒤 승자가 돼 만인지상의 반열에 선 이후에도 이처럼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국민의 공복'의 위상을 유지해 달라는 것이다. 그럴 만한 정치적 의지가 없다면 국민들의 선택을 기다리기 이전에 먼저 스스로의 거취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parkp@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