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영자총협회가 어제(11일) 유력 대선후보들의 경제공약에 대한 자체 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기업 경영자들이 대통령 후보들의 집권공약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금기시되어왔던 그동안의 분위기를 감안하면 경총은 이번 공약평가 결과를 발표하기까지 적지않은 고민도 했을 것이다. 그만큼 이번 선거쟁점들에 대한 경제인들의 우려가 깊다는 반증도 되겠다. 우리는 이번 대통령 선거전이 우리사회 일각의 반기업정서를 확대 재생산하는 통로로까지 전락하고 있음을 이미 지적한 바 있다. 이같은 우려는 엊그제 후보들의 경제분야 토론회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근로자·농민 보호 등의 이름으로 선심성 공약이 남발되고 대기업에 대해서는 적절한 평가는커녕 해체 또는 개혁되어야 할 대상으로 거론되며 경직적인 노동시장의 낡은 구조를 옹호하는 듯한 후보들의 발언도 줄줄이 이어졌다. 일부 후보는 FTA 같은 국제사회와의 약속까지 폐기 또는 보류해야 할 것처럼 주장하기도 했다. 국제 경쟁의 최일선에서 뛰고 있는 기업인들이 이같은 상황에 대해 그 누구보다 깊은 실망감을 느꼈을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경총의 이번 공약평가는 그러나 '평가 결과 구체적으로 어떤 후보를 지지한다'는 것에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이 역시 정치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기업 경영자로서의 한계와 고뇌를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경제 중심',노무현 민주당 후보를 '분배 중심',권영길 민노당 후보를 '노동 중심'으로 표현한 외엔 공약사항들에 대한 구체적인 찬성과 반대 입장도 밝히지 않고 있다. 굳이 찬반을 밝힐 필요도 없는 것은 시장논리에 입각한 경제 철학을 가진 후보가 비교적 명백히 드러나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권력자의 말한마디에 기업의 운명까지를 걸어야 하는 경영자들의 단체가 오죽하면 공약 평가라는 위험한(?) 일에 나섰을까 하는 차원에서라도 이번 공약 평가 결과는 우리 모두가 진솔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본다. 잘못된 정치적 선택으로 국가의 앞날을 그르친 역사적 사례가 한두번이 아니었음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남미병'이라는 말도 있지만 국민들이 당의(糖衣)를 입힌 '포퓰리즘'을 선택한 결과 세대가 바뀌도록 혼란을 되풀이하고 있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의 사례는 기억할 가치가 있다. 경총의 평가가 전적으로 옳다고는 볼 수 없겠다. 그러나 후보는 물론 유권자들도 기업인들이 어렵사리 내놓은 공약평가를 진지하게 들여다 볼 필요는 충분히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