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키아TMC가 84년 설립됐을 때 "핸드백보다도 더 큰" 휴대폰을 한달에 2천대씩 만들어 수출했지요.그러던 것이 91년 한해 생산량이 처음으로 1백만대를 넘어섰고 지금은 4천만대를 생산해 전량 수출합니다.노키아가 전세계에서 생산하는 휴대폰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지요." 이재욱 노키아TMC 회장(61)은 애국하는 기업의 정의를 "달러를 한반도에 많이 떨어뜨리는 회사"라고 잘라말한다. "내보내는 것보다 들여오는 달러가 더 많아서 그 차액으로 우리 나라를 부자로 만드는 게 애국하는 기업이죠.수출하려면 수입도 필요하지만 백화점 같은데는 수입하느라 엄청난 달러를 바다 밖으로 버리잖아요.극단적으로 비교하면 그렇다는 얘기죠." 그는 "노키아TMC가 한국에서 고용을 일으키고,달러를 남기고,기술을 전파하지 않느냐"며 "자꾸 외국 기업이라고 부르지 말아달라"고 강조한다. 그의 정의를 따르자면 노키아는 주인만 외국인일 뿐 한국에서 애국하는 회사다. 노키아TMC는 지난해 국내 외국기업중 가장 많은 27억달러의 매출을 올려 9억달러의 이익을 남겼다. 다국적기업의 많은 한국인 사장들이 애국심과 회사에 대한 충성심 사이에서 크고 작은 갈등을 겪지만 이 회장은 그만의 철학을 고집해왔다. 전세계 공통된 로고를 따르지 않는다. 본사 R&D 조직이 서울에 세운 연구개발센터가 있지만 이와는 별도로 이 회장이 직접 경기도 산본에 기술개발센터를 지었다. 본사의 R&D 일정으로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변하는 한국 사람들의 입맛을 맞추기 어렵다고 판단해서다. "제조 현장에서도 본사 메뉴얼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으면 다른 기술을 사용해왔어요.본사에서는 왜 시키는대로 하지 않느냐고 안 좋게 보는 것도 있지요.원래 그렇게 하면 안되지만 임금이 10분의1밖에 안되는 중국보다도 낮은 원가에 좋은 품질의 제품을 만들고 있다고 자신하고 있어서 밀어 부치는 거예요." 이 회장은 자부심이 크다. 다른 기업들은 저마다 중국으로 제조 설비를 갖고 나가지만 노키아TMC는 여전히 한국에서도 경쟁력있는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엔 3백만대를 만들었지만 다음달엔 5백만대가 필요하다고 쳐요.어느 나라고 같은 설비,같은 인력으론 불가능하다고 포기하겠지요.하지만 우리는 됩니다.한국인에게만 있는 융통성이란 게 바로 이런 것 아니겠어요." 이 회장은 융통성이야말로 한국 기업 최대의 장점이라고 강조한다. "인건비나 인재의 절대적인 수만 따지면 중국한테 백전백패죠.하지만 한국 회사가 잘 될 수 있는 것는 정으로 뭉쳐 이론을 뛰어넘는 결과를 내놓기 때문이예요.삼성전자가 짧은 시간에 세계적인 반도체 회사로 올라선 것이나 현대중공업이 조선소도 없이 수주를 받은 것은 외국에선 불가능한 일이죠.우리는 왕왕 우리가 뭘 잘하는 지 잊어버리고 사는 것 같아요." 이 회장은 그래서 한국 조직은 리더의 역할이 어느 나라보다 중요하다고 믿고 있다. "한국에선 리더의 역할이 매우 힘듭니다.리더가 직원들에게 신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는지 여부가 기업의 사활을 가르기 때문이지요.리더는 직원들에게 정을 쏟아야하고 때로 희생도 해야합니다." 이 회장은 최근 큰 수술을 마치고 회복기에서 막 벗어났다. 간부들은 그를 제법 무서워하지만 젊은 여사원들은 그의 등을 툭툭 치면서 "이제 안 아파요?"라며 농담을 걸어온다. 회사 전체가 하나의 가족이다. "전자산업은 머리를 많이 써야 합니다.나한테도 한계가 오고 있지요.1~2년이 더 지나 본사에 미안해질 때가 되면 그만 둬야지요.은퇴를 하더라도 농촌에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있지 않겠어요?" 글=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 ----------------------------------------------------------------------- [ 약력 ] 1941년 서울생 서울대 전자공학과 창원대학교 명예경영학 박사 67년 대학광학 입사 74년 대한전선(현 대우일렉트로닉스) 입사 86년 노키아TMC 대표이사 대한검도협회장 2001년 금탑산업훈장 2002년 핀란드정부 훈장(노키아글로벌 사업공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