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는 세계박람회 유치 실패로 망연자실하고 있다. 유치희망에 부풀어 부동산값이 오르는 등 들떴던 이 항구도시는 가라앉고 있다. 미리 준비해 놓았던 '우리가 해냈습니다. 2010 세계박람회 유치' 같은 플레카드는 버려졌고 축포와 농악놀이는 취소됐다. 여수의 도전과 좌절은 우리 정부의 지역정책이 얼마나 '우물안 개구리식'인지 여실히 보여준 촌극이었다. 2010년 개최권을 따간 중국뿐만 아니라 이번 모나코 유치전에 참가한 경쟁국들은 하나같이 자국의 수도 아니면 상업중심도시들을 내세웠다. 중국은 '승천하는 용의 머리'라는 상하이를, 러시아는 모스크바, 멕시코는 멕시코시티를 선발로 뽑았다. 한국의 여수는 헤비급 선수전에 핀급이 출전한 것처럼 느껴졌다. 세계박람회를 유치해 낙후된 서남해안지역의 발전을 앞당기고 여수일대를 동북아 해양허브로 키운다는 구상은 멋졌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우리 내부의 도전이고 비전일 뿐, 세계적인 공감대나 호소력은 약했다. 세계박람회 개최경쟁에서 결정적인 것은 유치국의 경제력과 후보도시의 브랜드파워다. 이 때문에 지방 중소도시에서 개최된 전례는 일본의 쓰쿠바 정도에 지나지 않고 이 역시 도쿄 인근 수도권 도시였다. 영국이나 프랑스도 런던이나 파리를 벗어나지 못하는게 현실이다. 이런데도 한국은 마치 초강대국인양 '우리가 마음 먹으면 다 된다'는 식으로 다도해의 작은 해안도시 여수를 들고 출전했다. 여수엑스포는 처음부터 글로벌경쟁시대에 부응하기 위한 '국제용'이라기 보다는 지역배려차원의 '국내용' 성격이 짙었다. 이를 처음 추진한 것도 문정정부의 지역정치적인 산물인 해양수산부였다. 그렇지만 여수의 입지여건 등에 비추어 세계박람회 사이에 열리는 특화박람회 형태인 '해양엑스포'는 설득력이 있었다. 이대로 했더라면 여수는 좌절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지역균형발전론이 더욱 힘을 얻고 서남해안지역에 대한 비전이 부풀려지면서 여수 해양엑스포는 어느새 세계박람회로 격상됐다. 여수의 실패는 이 때 잉태됐다. 어디 우리나라만 세계박람회를 낙후지역에 유치해 균형발전을 앞당기고 싶을까. 2010년 개최권을 획득한 중국도 내륙낙후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그동안 쌓아온 공든 탑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비관론이 대두될 정도로 지역불균형이 심각하다. 한데도 중국은 '제일 잘 나가는 상하이'를 선정했다. 이제 '도시든 기업이든 잘 나가는 것을 더욱 북돋워 세계최고로 키워야 나라 전체가 산다'는 신자유주의 정책흐름은 싫든 좋든 대세다. 공식적으론 여전히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중국도 이 흐름을 거역하기는 커녕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선진국도 마찬가지다. 1996년 영국은 새천년기념사업으로 건립할 '밀레니엄 돔'을 런던에 두느냐 지방에 유치하느냐를 놓고 국론이 갈렸다. 당시 집권여당의 대모 마거릿 대처 전 총리는 "지역정책은 정치적인 유혹에 빠지기 쉽지만 이를 극복해야 영국이 산다"며 런던을 밀었고 결국 그렇게 됐다. 한국은 거꾸로 가고 있다. 경제특구는 신공항 배후지역, 자유무역도시는 제주도, 세계박람회는 여수다. 이런 식으로 정치적인 생색은 골고루 냈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되는게 없다. 만약 여수는 당초 계획대로 특화(해양) 엑스포로 가고 세계박람회는 신공항 인근에 유치한다는 전략을 세웠더라면 성사 가능성은 훨씬 높았을 것이다. 이 경우 수도권의 경제력이 뒷받침되면서 박람회 성공은 확실히 담보됐을 것이고 신공항 허브기능과 경제특구의 조기정착 등 1석3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었을 것이다. 여수의 실패는 정치적인 명분론과 지역정서에 함몰돼 있는 지역정책이 환골탈태하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 leed@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