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추곡수매가 인하안이 나올 줄로 생각했는데 양곡유통위원회가 엉뚱한 제안을 내놓아 더 골치 아프게 됐습니다."(농림부 관료) "양곡유통위가 농민의 비난을 무릅쓰고 인하안을 제시해도 농림부가 작년처럼 동결안으로 돌리면 우리만 '바보' 되는 것 아닙니까."(양곡유통위 관계자) 지난달 30일 농림부 장관 자문기관인 양곡유통위원회가 내년도 추곡수매가를 '2% 인하 또는 3% 인상'이라는 복수안을 대정부 건의안으로 내놓은데 대해 농림부와 양곡유통위는 이처럼 상반된 입장을 나타냈다. 형식상 자문기관이지만 농림 관료의 속사정에 밝은 양곡유통위가 복수안을 제시한 것은 농림부로선 예상 밖이었다. 농림부는 오는 2005년 쌀시장 추가 개방을 앞두고 소득보전직불제와 생산조정제를 올해 도입하는 등 구조조정 정책을 추진해 왔다. 가까운 미래에 추곡수매제도 폐지가 불가피하다는 여론도 자연스럽게 조성됐다. 유통위가 이에 맞춰 2003년도 추곡수매가를 '인하'로 건의하면 농림부도 그대로 확정한다는 속셈이었던 것. 농림부 관계자는 "다소 충격이 있더라도 향후 시장 개방에 대비해 추곡수매가 인하는 불가피하다"면서 "사상초유로 유통위가 복수안을 제시하는 바람에 수매가 결정이 '뜨거운 감자'로 정부에 떠넘겨졌다"며 수매가 문제가 논란거리로 불거질 것을 걱정했다. 이에 대해 양곡유통위 성진근 위원장은 "위원회가 지난해 십자가를 멘다는 심정으로 추곡수매가를 내릴 것을 건의했다가 정부가 동결시켜 위원들이 대거 사퇴해야 했다"며 "이런 분위기에서 소신있는 결정이 가능하겠냐"고 반박했다. 대통령 선거철을 맞아 농림부가 홀로 추곡수매가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하게 된 것이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모르는 바 아니다. 김동태 농림부 장관은 지난해 국내 쌀 산업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선 2003년부터 2년에 걸쳐 추곡수매가를 7.5% 낮추겠다고 약속하는 등 정부의 입장을 이미 몇차례 피력해 왔다. 농림부가 지난해처럼 주변의 눈치만 살피는 어정쩡한 정책을 답습할지, 진정으로 농민을 위해 중장기적인 대책을 세우는 정부부처로 거듭날지 두고 볼 일이다. 임상택 사회부 기자 lim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