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의 미국 대통령선거는 TV선거로 곧잘 인용되곤 한다. 공화당 후보 리처드 닉슨은 부통령으로 정계에 널리 알려진 전국적인 인물이었던 반면 민주당의 존 F 케네디는 젊은 상원의원에 불과했다. 케네디 진영에서는 선거가 시작됐는데도 좀처럼 지명도가 오르지 않자 TV토론을 제안했는데 이 토론이 선거판도를 바꾸어 버렸다. TV의 영향력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던 케네디는 미디어에 맞는 분장과 조리있는 언변으로 닉슨을 압도해 버린 것이다. TV토론은 미국 외에 프랑스에서도 일반화되고 있으며 독일에서는 지난 8월 여야 총리 후보간 생방송 토론을 처음 실시했다. 그러나 보수주의 색채가 짙은 영국에서는 영상매체가 갖는 경박함과 지나치게 이미지 위주로 흐른다는 반론에 부딪혀 TV토론에 대해 부정적이긴 하다. 우리의 경우는 지난 95년 서울시장선거 때 TV토론이 첫선을 보였으며,97년 대통령선거에서는 토론이 더욱 활성화됐다. 대선 후의 한 여론조사를 보면 텔레비전토론이 지지후보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응답한 사람이 80%에 육박할 정도로 그 위력은 대단했다. TV토론은 미디어선거에서 백미로 꼽히는데,올 대선에서도 세차례의 합동토론이 판세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후보들은 전력을 다해 이에 대비하고 있다. 엊그제 생중계된 토론을 위해 후보들은 모든 선거유세를 중단한 채 실전을 방불케 하는 리허설을 여러번 갖기도 했다. 한나라당은 미디어대책본부팀을 가동하고 있으며,민주당은 미디어특별선거본부에서 토론회 준비를 맡고 있다고 한다. 영상매체의 토론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정책보다는 번지르르한 말솜씨나 재치문답 같은 순발력,억지로 꾸며낸 매너 등 비본질적인 면에 유권자들이 현혹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지 정치의 함정에 빠질 위험성이 다분하다는 얘기다. 어쨌든 TV토론은 저비용·고효율의 선거제도로 자리를 잡아가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그러나 '말'의 홍수속에서 후보들의 국가관과 정책비전을 파악하는 일은 여전히 유권자들의 책무일 것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