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인들과 해외출장을 가보면 이들의 행동방식이 딱 2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번째는 안전계획파다. 두번째는 기습전략파다. 안전계획파는 출장을 떠나기 전 모든 것을 계획한 뒤 한치라도 오차가 나면 노발대발한다. 반면 기습전략파는 계획을 최대한 짜놨지만 현지 사정으로 돌출변수가 생겼을 때 그 상황에 맞춰 금방 적응하고 공격한다. 10년전까지만 해도 양쪽 기업인 가운데 안전계획파가 확실히 좋은 성과를 올렸다. 수출오더를 더 많이 받고 협력파트너도 쉽게 구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요즘들어선 기습전략파가 훨씬 나은 성과를 거둔다. 왜 이렇게 바뀌었을까. 경영전문가들은 기습전략파가 더 경쟁력이 강해진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21세기에 들어오면서 기업의 경영환경은 바로 코앞의 상황도 예측할 수 없는 부문이 많아 안전계획파는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처럼 미래예측이 불가능하고 불연속적이고 비선형(非線型)적이며 테러적인 경영환경에선 돌출변수가 나타나도 금방 적응하고 공격할 수 있는 기습전략파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기업인들과 해외시장에 중소기업시장개척단원으로 나갔을 때 안전계획파들은 이틀정도는 잘 견뎠다. 그러나 3일째에 접어들면서 불평불만이 팽배해지더니 거래상대방에 대해 "형편없는 사람들"이라며 시장개척 활동을 완전히 포기해버렸다. 이에 비해 기습전략파는 시간이 지날수록 사기가 높아졌다. 사전에 약속하지 않은 상대방이 나타나도 서슴없이 면담을 한 뒤 밤늦도록 상담을 벌이곤 했다. 카자흐스탄 시장개척단에 참여한 김현준 다린테크 대표는 알마티시장이 소개해준 사람을 만나서 그 사람과 사귄 뒤 다음날부터 사슬고리처럼 인맥을 만들어나가더니 4일째 되는 날은 결국 수출오더를 따냈다. 중소기업에겐 불모지인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대규모 수주를 따낸 드림투리얼리티의 김종철 대표도 기습전략에 강했다. 끊임없이 뉴비즈니스를 개발해내는 양웅섭 아이디어파크 대표도 그랬다. 멕시코에 신물질 원료공장을 세운 쎌텍스의 장진혁 대표도 기습에 강하다. 중국시장을 공략중인 이수현 넥스트젠 대표도 상황적응력이 뛰어난 여성기업인이다. 드디어 중소기업의 경영환경이 미래예측적인 지났다. 스스로 혁신하고 돌출 환경에 적응할 줄 알아야 성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최악의 여건에도 불구,스스로를 혁신해 성공한 대표적인 기업인은 오대규 노리넷 대표다. 선천성 뇌성마비 장애인인 그는 기습전략 하나로 기업을 일궈낸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 99년 모바일게임업체를 창업한 그는 7개월간 창투사의 문을 두드렸으나 투자를 유치하지 못했다. 다리가 불편해 계단 하나 오르는데도 진땀에 젖어야 하는 그는 7개월간 41개 투자회사로부터 퇴짜를 맞고도 42번째 회사에 투자를 요청하러 나섰다. 얼굴이 가끔씩 일그러지는 그는 모바일게임 부문에 투자받아 창업을 하겠다는 일념만으로 강남 성진빌딩 10층에 있는 투자회사의 문을 두드렸으나 또 퇴짜를 맞았다. "이 따위 쓸모없는 솔루션으로 3억원씩이나 투자해달라니 정말 정신나간 거 아냐" 라는 빈정댐만 들었다. 그래서 43번째 도전에선 더욱 기습적인 전략을 펴기로 마음먹었다. 사전 약속도 없이 현대기아벤처플라자에 불쑥 찾아가 땀을 훔치며 물한잔을 요청해 담당자와 면담을 할 기회를 얻었다. 그의 도전적인 설득에 담당자는 뜻밖에도 솔깃해 했다. 오 대표는 이날 바로 현대기아벤처플라자로부터 투자의향서를 받아냈다. 요즘 모바일게임과 각종 첨단 솔루션을 사업화해 급부상하고 있는 그는 창업을 하기 이전에도 기습전략으로 한차례 성공을 거둔 인물이었다. 장애인의 몸으로 보험회사인 AIG에 들어가 영업사원을 자청했던 것이다. 어느 누구도 그가 보험영업을 해내리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말이 어눌한데다 가방 하나도 들고 다니기 힘든 그가 보험사 영업사원을 한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6개월만에 최고의 영업실적을 쌓아 최연소 팀장으로 승진하는 쾌거를 올렸다. 요즘 기업인들을 만나면 지난해 연말에 세워놓은 매출목표가 비슷하게 맞았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어떤 기업인은 목표에 절반도 못 채워 위기에 처했다고 울상인가하면 어떤 기업인은 목표보다 3배로 껑충 뛰어올랐다고 자랑한다. 왜 이렇게 심하게 차이가 날까. 여기엔 여러 가지 변수가 있겠지만 역시 목표보다 3배로 올랐다는 기업은 대부분 기습전략을 전개한 곳이었다. 내년에도 우리에겐 전혀 예측할 수 없는 테러적인 상황이 찾아올 것이다. 이를 이겨내려면 민첩하게 대처하고 기습적으로 공격을 펼쳐야 한다. 아무리 작은 기업이라도 기습전략파가 되면 대기업을 겁낼 필요가 없다. 대기업이 거대시장을 장악하고 있어도 언제든 기습전을 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중소기업도 이제 세계시장을 기습해야 할 때가 왔다. r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