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문시장 중앙로와 대한화재빌딩 골목 등지에 형성된 남대문안경시장. 일본인 고객이 줄고 소비가 둔화돼 90년대 '영광'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여전히 우리나라 '안경 메카'다. 전국에서 유통되는 안경의 90%가 이곳을 거친다. 2백50여개 도소매점에는 하루 1만여명의 고객이 찾아온다. 토요일인 지난 23일 오후 3시. 지하철 4호선 회현역 5번 출구에서 1백여m쯤 올라간 남대문시장 입구. 때이른 크리스마스 캐럴이 요란하다. 오리털 점퍼를 입은 청년 서넛이 손짓을 한다. "안경 하나 보고 가세요.싸게 해드릴게." 힐끔힐끔 안경가게를 들여다보던 10대 커플이 발을 들여놓는다. "안경업 수십년 만에 최악"이라고 말하던 박민서 사장(천사안경원)은 환한 미소로 손님을 맞는다. 수능을 끝낸 신정현군(18·서울 태원고 3년)은 여자친구와 함께 안경을 맞추러 왔다. 신군은 "10만원 정도 들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3만원이 빠져 영화나 한 편 볼 생각"이라며 시력검사대에 턱을 괸다. 20대 여성고객이 또 들어온다. "도수 있는 스키고글 있어요?" 추위가 일찍 찾아온 덕에 스키고글을 찾는 손님이 부쩍 늘었다. 이에 따라 여름철 '선글라스 특수'에 버금가는 '스키 특수'를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스키고글은 1만원짜리 중국산부터 1백만원대 명품까지 천차만별. 오클리(미국)나 옥스(일본)와 같은 20만∼60만원대 고급 고글이 날로 인기다. 안경에도 명품 바람이 불고 있는 셈이다. 남대문 안경시장의 명품 바람은 패션 선글라스에서 시작됐다. 2,3년 전부터 아르마니 프라다 구치 페라가모 등 명품 취급점이 늘기 시작했다. 고려안경도매상가 아이리스사 박동욱 사장은 "2,3년새 명품을 찾는 고객이 서너 배로 늘었다"며 "명품 없으면 장사를 생각할 수 없다"고 말한다. 백화점에 비하면 최소한 30% 싸다는 것이 상인들의 얘기. 베스트셀러인 구치의 경우 18만∼25만원이며 샤넬 최신 모델은 35만원,구형은 15만원대다. 일반 안경도 20∼50% 정도 싸게 판다. 형상기억합금이나 티타늄 소재 테를 고르면 값이 훌쩍 올라가지만 보통 안경은 2만∼4만원이면 맞출 수 있다. 먼곳 가까운 곳을 동시에 볼 수 있는 '누진다초점렌즈'는 40대 중반부터 60대 중반까지 고객들이 많이 찾는다. 가격은 렌즈만 6만∼15만원대. 찾는 사람이 반감했지만 일본인들에게 남대문은 '경이적인' 곳이다. 명동지하상가 리갈안경을 찾은 일본인 신 다카오카(26)는 "한국산 티타늄 테와 멀티코팅렌즈로 맞췄는데 점심 먹고 돌아왔더니 완성돼 있었다"고 말한다. 일본에서는 대개 2∼3일은 걸린다. 값은 1만7천엔. 그는 "일본보다 40% 정도는 싼 것 같다"며 좋아했다. 일본에 비해 싸다지만 남대문 상인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가격차가 갈수록 좁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10년 전만 해도 일본에서 안경 하나 맞출 돈이면 남대문에서 10개를 맞출 수 있었는데 지금은 2개밖에 맞출 수 없다는 것. 한국 상인들이 일본 안경시장에 진출,가격 파괴를 주도하고 있고 중국산 반제품이 안경 가격을 끌어내리고 있다. 게다가 재래시장의 위상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어 남대문 상인들은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전국 곳곳에 들어선 할인점내 안경점이나 가격파괴형 대형 안경점들이 라이벌로 등장했다. 그래도 상인들은 자신감을 잃지 않고 있다. 이들은 아직도 가격경쟁력이 있고 품목이 다양하기 때문에 서비스만 개선하면 '안경 메카'의 위상을 지킬 수 있다고 믿는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