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가 10년전 일본의 모습과 유사하다며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디플레가 목전에 와 있으나,특별한 대책이 없다는 우려가 그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미국에서는 디플레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통화정책 무용론이 등장할 가능성도 낮다. 디플레란 모든 물가가 떨어지는 것을 말한다. 어떤 가격은 오르고,어떤 가격은 떨어지는 상황을 디플레라고 하지는 않는다. 제품 가격이 떨어지면 해당 회사는 당연히 기분이 나쁘다. 기업 입장에서는 디플레가 찾아왔다며 가격 인상을 유도할 수 있는 통화정책을 요구하는 게 당연하다. 물가 상승률이 거의 0%로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제품가격이 떨어진 기업들은 디플레 주장을 더욱 당당하게 펼 수도 있다. 하지만 기업들의 '디플레 논리'는 한계를 갖고 있다. 물가가 10% 오르더라도 가격이 5%밖에 인상되지 않은 상품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게 된다. 이런 현상은 '물가안정'이지 '디플레'가 아니다. 미국 경제는 지난 수십여년간 5∼10%의 물가 상승을 경험한 뒤 이제서야 안정을 누리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집중한 결과다. 일부에서는 연방기금 금리가 40여년 만의 최저치(1.25%)로 떨어져 통화정책의 '실탄'이 떨어졌다고 걱정한다. 명목 이자율이 0%에 가까워 FRB가 통화정책을 제대로 펼 수 있는 여지가 있을까 하는 우려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일본 중앙은행의 사례를 들어가며 FRB가 저성장의 굴레와 추락하는 물가에 대해 어떤 대책도 마련해 놓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중앙은행은 국채를 사고 파는 행위를 통해 통화정책을 편다. 일반 시중은행에 대해서는 대출도 해준다. 화폐를 찍어낼 수 있는 중앙은행은 회계장부상 무제한의 능력을 갖고 있는 셈이다. 금리가 0%에 근접했다고 이러한 능력이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FRB는 언제라도 국채를 사들일 수 있으며,이같은 방법으로 시장에 무제한의 돈을 공급할 수 있다. 인위적으로라도 물가를 올릴 수 있다는 말이다. 적절한 때가 오면 FRB는 국채매입을 통해 통화를 풀 것이다. 정보통신(IT) 산업의 침체와 기업의 회계부정 스캔들 등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금융시스템이 한번도 흔들리지 않았다는 점도 일본과 차별화되는 대목이다. 미국 정책 당국자들은 금융 구조조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다. 필요할 경우 단호한 정책을 동원,금융시스템이 작동하도록 할 것이다. 일본 정부와는 분명히 다르다. 다만 경상수지 및 재정수지 적자는 커다란 걱정거리다. 특히 정책 당국자들이 지나친 욕심을 부려 1990년대말 누렸던 4%대의 경제성장을 추구한다면 사태는 더욱 악화될 수 있다. 향후 미국 경제가 연 3%의 경제성장과 2% 내외의 물가 상승률(인플레이션),5.5% 수준의 실업률 내에서 운용된다면 가장 행복한 시나리오가 될 것으로 보인다. FRB가 이들 세가지 변수 중 한가지에 지나치게 치중한다면 미래는 매우 어둡게 변할 것이다. 물가상승과 재정적자 확대로 저성장에 빠지고 이자율은 올라가는 위기를 맞게 될 가능성이 있어서다. 정리=유영석 기자 yooys@hankyung.com -------------------------------------------------------------- ◇이 글은 스티븐 시세티 오하이오주립대 경제학과 교수가 파이낸셜타임스에 기고한 'Ignore the whining about US deflation'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