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마련 중인 회계제도 개혁안대로 된다면 투명성에 관한 한 우리 기업은 세계 최고 수준이 될 것이다. 재계에서 반발하고 있지만 분식회계로 우리 경제에 엄청난 주름살을 끼친 한보 대우 등의 케이스를 생각하면 뭔가 방지책을 마련하려는 정부의 입장도 이해가 간다. 그런데 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할 일이 있다.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기업을 하려는 사람이 과연 많아질 것인가 아니면 줄어들 것이냐의 문제다. 인구가 워낙 많으니 분명히 기업하려는 사람이 늘어나긴 할 것이다. 그러나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라면 더욱 많아질 수도 있는 '잠재 기업가'들을 놓치게 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지금도 대표이사에 오르지 않고 상무 전무로 회사를 그만두는 사람이 적지 않다. 대표이사가 되면 회사빚에 개인자격으로 보증을 서야 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평생 모은 돈을 한번에 날리는 것을 겁내 자발적으로 도중 하차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회계제도개혁안대로 된다면 사장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사장의 책임이 지금보다 훨씬 막중해지니 말이다. 사업보고서마다 책임지겠다는 사인을 해야 하고,잘못되면 민사상 책임까지 져야 하고,급여도 모두 공개해야 하며,경영철학도 수시로 밝혀야 한다. 차라리 기업 안하는 게 속편하다는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기업은 본질적으로 '불투명성'에 사업의 기반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음 계절엔 어떤 색이 유행할지 모르기 때문에 가장 확률이 높은 유행색을 찾고 거기에 승부를 거는 것이다. 그것이 맞으면 '대박'이요,틀리면 망하는 것이다. 경쟁사가 모르는 새 기계를 들여와 몇 달을 밤새워 돌려 원가를 절반으로 떨어뜨리면 시장에서 이길 수 있다. '투명하지 않아야' 가능한 일이다. 특히 글로벌 경쟁상황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다국적 회사들과 경쟁할 때 모든 것을 공개해야 하는 우리 기업은 불리한 조건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 기업은 상대방의 정보를 하나도 모른 채 옷을 벗고 싸워야 한다. 내수 경기가 꺼진 상황에서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는 방법은 몇가지 안된다.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리거나 기업이 수출을 많이 하거나 기업들이 투자를 많이 하는 방법이 전부다. 앞의 두 가지는 한계가 있다. 기업 투자는 지금도 풀리지 않고 기업금고에 현금으로 잠겨 있다. 투자유인책을 마련해도 될까 말까 할 때 투자억제책을 마련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이 유리알처럼 투명해지는 것이 반드시 좋은 일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