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도 미국의 로(law)스쿨에서 여성입학자 수가 남학생을 초과했다. 비즈니스스쿨과 의과대학에도 여학생이 쇄도하고 있다. 초·중·고 어느 학급에서나 사내아이들은 바닥을 채우고, 최상층의 70∼80%를 여학생이 차지한다. 학급대표 등 리더십 자리도 여학생이 거의 점유한다. 놀랍게도 많은 명문대학에서 50대50의 남녀 성비(性比)를 맞추기 위해 우수한 여자지원자를 탈락시키고 미달된 자격의 남자 손을 들어주고 있다. '남녀기회균등법'이 통과된 이후 30년간 미국의 여자들은 진정으로 남자와 동등한 권리를 얻으려면 실력으로 이겨야 한다고 들어왔다. 가정이나 사회에서나 여아들은 '남자들이 가진 것을 공격해라, 너는 얻을 수 있다'고 자극받는다. 반면 남아들은 풋볼경기와 단순한 삶에 만족하는 아버지의 가치관을 주입받는다. 학교에서 태만해도 졸업 후에는 부권사회의 수혜자가 되려니 생각하는 것이다. 미국은 이제 '사무직은 여자,노무직은 남자가 하는 나라(a country of women in white-collar jobs and men in blue-collar jobs)'가 될 것이다. 이는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지난 10월 31일 미국 CBS '60 minutes: The Gender Gap'가 방영한 내용이다. 미국여성의 사회진출 영역은 이제 커질대로 커져 성(性)의 역차별이 오히려 논의될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동안 여성에게 불리했던 사회적 제도적 여건이 크게 호전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여성에게 주어진 강력한 동기부여가 오늘날 이런 개가(凱歌)를 올리는 원동력이 됐다고 하겠다. 한국은 아직 여성의 사회진출이 부진한 나라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여성은 강하고,하나같이 결혼은 안중에 없고 사회진출에만 관심을 갖는 듯이 보인다. 국민성은 그지없이 성급하며,사회는 엄청난 변화를 단숨에 수용하는 능력을 과시해왔다. 3년 전 남녀차별금지법이 발효되고,미국에도 없는 '여성부'가 탄생하는 등 친여성적 제도정비도 급격히 이루어지고 있다. 필자의 눈에는 한국의 여성계가 미국수준으로 발전하는 것도 눈앞의 일로 보인다. 11월 초 여성부는 기업의 모집·채용에 남녀차별을 금지하는 기준을 신설·강화한다고 발표했다. 남학생만 추천의뢰하거나,미혼여성일 것,여비서 급구,남기사 구함,남성 우대,키 170㎝ 이상 등을 표시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이다. 입사후 커피 심부름을 할 수 있는지,결혼 후에도 계속 근무할 것인지 등을 질문하는 것도 안된다고 한다. 몇달 전에는 공무원을 임용함에 있어 소수 지원자에게 30% 가산점수를 주는 양성평등목표제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는 이런 규제가 과연 모든 여성들에게 정당한 것인가,도움이 되는 것인가를 돌아보아야 한다. 커피를 나르거나 미혼 때만 일할 여성을 채용하겠다는 기업을 정부가 막으면 이런 일자리는 아마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런 자리라도 찾는,또는 이런 조건에서라도 시작해 자기발전을 이루겠다는 여성들의 취업기회는 없어질 것이다. 그런데 커피 나르는 일은 천한 일이고,서류 들고 다니는 일만 귀한 일이란 말인가? IQ 170은 머리 좋아 채용되는데, 신장 170㎝는 우대 받으면 안되는 조건인가? 우리의 여성부는 하이칼라 여성과 직장에나 관심이 있고, 여성다운 여성의 직장에는 관심이 없는 것인가? 오늘날 3D 업종은 넘쳐나지만 대졸자들이 찾는 '광(光)나는'자리는 남성들에게나 여성들에게나 부족하다. 여성이 일할 직장을 스스로 제약하고 비하함은 시대착오적 정책일 것이다. 오늘날의 우리 기업 수준이 '생산자'를 채용하지 '남성'을 채용할 의도를 갖는 수준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여성부가 한없이 다양한 우리 사회의 인력수요에 일률적 규제를 가하고,특정 성에 가산점을 요구하는 것도 시대착오라고 생각한다. 여성에게 공정한 사회적 조건을 만들려는 정부의 노력은 증대돼야 한다. 그러나 그 방향이 어긋나 뭇사람의 냉소거리가 된다면 장래 여성정책의 신뢰도에나 여성의 복지에나 도움이 될 리 없다. 미래 한국의 여성발전은 예정된 코스인데,이것은 인위적 기회보장보다 여성의 실력향상을 통해 참을성있게 진행돼야 할 과정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kimyb@ca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