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zzang0815@hanmail.net 누군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이야기하라면 나는 깃털만큼 적당한 표본이 또 있을까 싶다. 그러나 언젠가 나라 전체를 통째로 들썩거리게 했던 그 깃털 사건은 생각할수록 재미있는 발상이다. "나는 깃털에 불과하다." "몸통은 따로 있다." 만약 깃털이 말을 할 수 있었다면 '불과'라는 대목에서 심하게 화를 내며 따졌을 것이다. 요즘 뜨는 말로 '니들이 깃털을 알어'라고. 얼마 전 나는 가까운 친구에게 문득 내 존재의 무게가 궁금해 물었다. "나는 너에게 몇 킬로그램 정도 될까?" "깃털만큼은 될까?" 질문과 대답을 번갈아 하면서 그 깃털이 주는 왜소한 무게 때문에 내 마음은 어느 새 11월의 낙엽이 되어 거리를 뒹굴고 있었다. 그런데 친구는 "깃털이 얼마나 좋은 건데,요즘 같은 날씨에 깃털이 없다면 얼마나 추울까?" "깃털처럼 상대방에게 아무런 부담없이 그저 따뜻하게 해 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예상치 못한 그의 대답은 고달픈 여행에서 막 돌아와 좋은 사람과 마주하는 한 잔의 차처럼 편안함이 배어 있었다. 그렇다! 사람들은 모두가 몸통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살면서 무언가를 자꾸만 늘리고 불리려고 발버둥치고 있다. 재산도,지식도,심지어 고통까지도…. 하지만 누에가 열심히 짜놓은 자신의 고치 안에 갇혀 죽게 되듯이 사람 역시 자신이 불려 놓은 그 무게에 치여 서서히 압사당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그러나 조금만 깃털이 주는 그 야무진 존재의 이유를 이해한다면 이젠 조금씩 내려놓는 연습을 하자. 무병장수하려면 육체도 쓸데없는 지방을 줄여야 하듯 정신도 다이어트가 필요하지 않는가. 가진 것 없는 사람은 용감하다. 지킬 것이 없는 사람은 자유스럽다. 언제 어디서든 용감하고 자유스럽다면 꽤 근사한 인생이 아닌가. 깃털이 없는 몸통,이는 생각만으로도 코미디다. 물론 깃털 역시 몸통을 보호하고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일 것이다. 자신의 무게는 다 내려놓고,자신의 의지는 다 비워주고도 자신의 존재를 완벽하게 알려주는 그 지혜로움. 바람과 싸우지 않고도 바람과 친구가 될 수 있는 가벼움의 미학을 배운다면 우리도 서로에게 깃털처럼 따스한 존재가 될 수 있으리라. 만년에 온화한 미소를 가득 물고 두려움 없이 진정한 자유의 시간대로 떠날 수 있으리라. 깃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