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방지법 개정안을 비롯한 개혁법안 처리가 또다시 무산됐다. 부패 혐의로 현직 대통령의 아들이 구속되고 국정운영이 혼란에 빠지는 불행한 사태가 되풀이되고 있는데도 정치권의 현실인식이 이렇게 안이하다니 여간 실망스럽지 않다. 정치개혁을 바라는 국민들의 열망은 물론이고,여야 주요정당 대선후보들의 거듭된 대국민 약속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개혁입법이 무산된 까닭은 한마디로 개혁을 꺼리는 정치권의 집단이기주의 탓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부패방지위원회(부방위)에 공무원 직무감찰권,자료제출 요구권 및 조사권,특별검사임명 요청권 등을 부여하는 동시에 부방위내에 대통령 친인척 비리 조사처를 신설하는 내용의 부패방지법 개정안만 해도 그렇다. 부방위 위상을 이렇게 대폭 강화하는 것이 부정부패 방지를 위한 최선의 해법인지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없지 않다. 그러나 대안을 모색하려는 진지한 노력은 하지 않고, 잇따른 부실수사 시비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이 의심 받고 있는 마당에 단순히 검찰기능과 중복된다는 이유를 내세워 부패방지법 개정안만 무산시킨 게 과연 설득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정치자금법과 선거법의 합의실패도 명분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정경유착의 근본원인이 선거때 쓰는 막대한 정치자금과 직결돼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치자금의 투명한 처리와 돈 안드는 선거를 치르기 위한 선거공영제는 이만저만 중요한 과제가 아니다. 그런데도 이들 법안이 국회에 제출된지 몇달이 지나도록 방치되고 있다가 이제 와서 "대선을 30여일 앞둔 시점에서 법의 개정과 적용에 필요한 시일이 촉박하다"는 이유를 들어 법안처리를 반대한 일부 정치권의 행태는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핑계에 불과하다. 개혁법안 무산에 대한 비난여론을 우려해 정치권에서는 인사청문회법·국회법 개정안 등 여야가 합의한 일부 법안들만이라도 본회의에서 통과시키자는 의견도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이는 선거를 의식한 나머지 우선 비난여론을 피하고 보자는 얕은 술수에 불과하다. 누가 뭐라고 해도 개혁의 핵심은 권력형 비리 방지와 정치·선거자금의 투명한 처리에 있다고 본다. 다시는 권력형 부정부패와 정경유착의 검은 그림자가 드리우지 않도록 하려면,여야는 국회회기를 연장해서라도 부패방지법·정치자금법·선거법의 개정안을 대선전에 처리해야 마땅하다. 그렇지 않을 경우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이야말로 정치개혁의 걸림돌이라는 국민들의 지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