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거대 에너지기업 엔론이 지난해 말 파산보호신청을 하면서 15억달러에 이르는 분식회계가 드러났다. 엔론의 외부회계감사를 담당했던 아더앤더슨은 부실감사에 대한 처벌로 면허가 박탈되어 간판을 내리게 됐다. 정보통신업계의 대표주자 중 하나인 월드컴도 올 7월 파산보호신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월드컴의 분식규모는 당초 38억달러로 알려졌으나,최근 90억달러 이상인 것으로 밝혀져 놀라움을 더하고 있다. 회계투명성의 원조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던 미국의 회계제도가 만신창이가 되자 의회가 나서 회계감독권을 강화하는 입법안을 내놓고 있다. 폴 사반스 상원의원이 발의한 사반스 법안은 회계법인을 감독하는 독립적인 성격의 기구를 신설해 운영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지난 7월 미국 상원을 만장일치로 통과했다. 신설된 회계감독기구는 회계감사기준의 제정,회계법인에 대한 감독 및 부정행위 처벌 등의 권한을 갖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회계투명성의 위기는 미국보다 한발 앞서왔다. 외환위기를 촉발한 원인이 되었던 한보그룹과 기아그룹 뿐만 아니라 외환위기 이후 도산한 대우그룹도 조사 결과 거액의 분식회계가 드러났다. 분식된 재무제표 때문에 기업부실을 사전에 예측할 수 없었으며,부실기업에 거액의 대출금을 떼인 금융회사들은 스스로 생존할 능력을 잃었고,이를 살리기 위해 거액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정부는 회계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기업지배구조 개선작업과 함께 많은 회계제도 개혁조치를 내놓았다. 최근 정부는 민관합동의 회계제도개선실무기획단을 구성해 회계제도 개혁방안을 발표했다. 정부의 회계제도 개혁방안은 기업의 경영기관의 역할 및 책임강화,회계관련 공시제도의 강화,외부감사의 공정성 및 책임강화,회계감독기능의 효율성 제고,재무제표 확정기관의 변경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사회 및 경영진·감사의 역할과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사업보고서 등의 공시서류에 최고경영자와 최고재무책임자의 인증을 의무화했다. 또 재벌총수와 같은 사실상의 업무책임자도 민사책임을 부여하도록 하고,감사기능을 제고하기 위해 감사 및 감사위원의 자격요건 중에서 전문성요건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하도록 했다. 한편 자회사에 출자하고 있는 지배회사에 대해 분기 및 반기보고서에도 연결재무제표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스톡옵션의 경우 행사시점 이전에라도 공정가치를 적절히 반영해 재무제표에 관련비용이 계상될 수 있도록 했다. 외부회계감사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컨설팅업무와 감사업무간의 방화벽설치를 의무화하고,이해상충 소지가 큰 컨설팅업무는 금지하는 방안을 강구하기로 했다. 이같은 개선방안 중 사업보고서에 대한 최고경영자의 인증의무 및 분기재무제표에까지 연결재무제표를 포함시키도록 하는 부분에 대한 업계의 반대의견이 거셀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이 의도적으로 거짓자료를 내놓을 경우 회계감사인이 이를 적발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관점에서 보면 최고경영자의 인증의무는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연결재무제표를 분기보고서까지 확대하는 것은 비용과 효익관점에서 볼 때 과도한 것으로 보인다. 국제적 추세에 맞추어 연결재무제표를 확대하려면 우리나라에서만 작성하는,전세계에 유례가 없는 결합재무제표를 폐지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결합재무제표 작성의무를 계속 부과하려면,누가 어떤 목적에 사용하고 있는지를 입증해야 할 것이며,이를 규제개혁위원회가 독립적으로 심의해야 할 것이다. 회계투명성 제고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전문성을 갖춘 회계감독기구다. 현재 증권선물위원회가 회계감독업무를 담당하고 있는데,위원회 책임자들의 회계분야 전문성이 확보되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 발표된 개혁방안에서는 우선 현행 증선위의 회계감독기능 강화라는 방편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사례에서 보더라도 전문성을 갖춘 독립된 회계감독기구의 출범은 필수적이다. 금융감독기구 개편 논의과정에서 전문성과 독립성을 갖춘 회계감독기구의 필요성이 보다 강조돼야 할 것이다. leemm@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