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인 현대모비스 회장의 집무실 테이블에는 의자가 없다.


1백% 전자결재가 기본이기 때문에 임직원들이 '결재를 받기 위해' 찾아올 일이 없다.


박 회장은 서서 업무를 볼 수 있도록 '특수 제작'된 테이블에서 직접 컴퓨터 키보드를 조작하고 업무 지시를 내린다.


임직원들은 외부에 나가 있어도 휴대폰과 이메일 시스템을 연결해 회장의 결재 여부를 언제든지 알 수 있다.


올해 초 박 회장이 경영화두로 '스피드 경영'을 들고 나왔을 때만 해도 이처럼 파격적으로 바뀔 줄은 아무도 몰랐다.



당장 모든 서류 결재가 없어졌다.


최고 경영자(CEO)의 업무 스케줄을 파악할 이유도 사라졌다.


주요 경영 전략회의는 인터넷 화상회의로 대체됐다.


앉은 자리에서 자유롭게 자료를 뒤지며 회의를 준비할 수 있게 됐다.


물론 모든 기업들이 이같은 스피드 경영을 채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조직 문화가 변화해야 하고 임직원의 자질도 뒷받침돼야 한다.


박 회장은 조직과 인력의 학습 역량에 자신감을 갖고 있다.


박 회장은 지난 2000년부터 전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e-비즈니스 프로그램을 비롯해 각종 어학교육과 전문 분야의 교육을 끊임없이 실시하고 있다.


스크린 세이버나 홈페이지 경연대회도 열어 IT(정보통신) 분야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있다.


부서장 인사 고과에 부하직원 양성내용을 30% 정도 반영하고 있다.


업무와 상관없는 분야의 지식 전파에도 열성이다.


이달에는 해외영업본부를 맡고 있는 이여성 전무가 '이슬람 문화권의 갈등'이라는 리포트를 사내 인트라넷에 올렸다.


박 회장은 "이슬람 문화를 알아야 미국과 이라크의 갈등을 이해할 수 있고 중동지역의 정세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했다.


회사 임원들은 어떤 주제든 정기적으로 이같은 '지식 모듈'을 회사에 제출해야 한다.


박 회장은 "이러다가 회사를 대학원으로 만드는 것 아닌지 모르겠어요"라며 웃었지만 "대기업들을 모아 정보검색 경연대회를 하면 틀림없이 우리 회사가 1등일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대단한 자부심이다.


현대모비스는 지난 3년간 눈부신 성장을 거듭해 왔다.


지난 1999년에 1조6천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이 올해는 4조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2004년에는 6조원을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박 회장은 외형보다는 질적 성장을 강조한다.


"현대차 그룹의 경쟁력은 우리 회사 생산부품의 경쟁력에서 나옵니다. 1조원의 매출 증대보다는 10%의 품질 향상이 더욱 중요합니다."


그래서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자동차 산업의 무한경쟁은 계속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한때의 성취에 안주하면 패배하기 십상이란다.


능력있는 외국기업과의 전략적 제휴를 확대해야 하고 신기술도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루빨리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얼마전 독일 ZF사와 섀시모듈 합작사를 설립키로 한 것도 선진기술 습득을 위한 전략이었다.


박 회장은 "최고 경영자는 살벌한 경제 전쟁터에 나가 있지만 직원들은 신바람나게 일할 수 있도록 해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평소 간부들에게 책임은 스스로 지되 공은 부하직원들에게 돌리라고 얘기한다.


아랫사람들이 기를 펴지 못하는 조직은 가망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또 매주 수요일이면 그 주에 생일을 맞은 직원들과 기념촬영을 한다.


CEO와 직접 만남으로써 지난 69년 현대그룹에 입사했던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미래의 CEO'를 꿈꾸게 하고 싶다는 것이다.


어차피 기업은 직원들의 꿈과 정열을 모아 움직이는 조직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다만 조직 내 하위 5%의 낙오자는 수시로 걸러낼 생각이다.


"세 차례의 기회를 줘도 하위 5%를 벗어나지 못하면 그 개인을 위해서라도 그만 두게 할 것"이란다.


직원들에게 무작정 관대한 것이 아니라 옥석을 분명히 가리겠다는 뜻이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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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력 ]


<> 1943년 충북 영동생

<> 69년 현대자동차 입사

<> 70년 중앙대 경영학과 졸업

<> 78년 현대정공 이사

<> 83년 현대정공 상무

<> 85년 경희대 경영학 석사

<> 92년 현대정공 부사장

<> 95년 고려대 최고경영자 과정 수료

<> 97년 현대모비스 사장

<> 98년 은탑산업훈장 수상

<> 99년 한국철도차량공업협회 회장

<> 2002년 현대모비스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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