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정부가 발표한 회계제도 개혁방안은 엔론 사태 이후 급조된 미국의 회계 개혁내용을 대체로 답습한 것들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중에는 국내에서 이미 시행중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더라도 '개혁'이라고 하기는 어려운 것들도 있고 우리의 관행 및 현실과 거리가 멀어 현실성이 떨어지는 대목도 적지않다. 결산 보고서에 대한 최고경영자(CEO)의 책임각서 서명을 의무화한 것만 해도 그렇다. 지금도 국내 CEO들은 감사인과 공동으로 매 결산보고서에 직접 서명날인하고 있다. 서명과 별도로 책임각서를 한장 더 쓰라고 하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서명날인 외에 별도의 각서를 작성한다고 회계 책임이 강화되고 정보의 투명성이 높아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다. 분기별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하라는 대목은 기업의 현실을 무시한 의욕 과잉의 대표적인 사례다. 극히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면 다수 계열사의 복잡한 국제 거래관계를 모두 담아 3개월마다 보고서를 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의욕이 앞선 결과 기업들이 장부 정리하는데 시간과 열정을 바쳐야 할 정도라면 이는 본말의 전도에 가깝다. 또 연결재무제표 작성을 위해 투입되는 비용과 시간을 비교하면 회계정보 이용자들의 효용은 과연 얼마나 높아질지도 의심스럽다. 대주주 책임을 증권거래법에 명시하겠다는 것도 CEO 서명 문제처럼 중복이기는 마찬가지다. 대주주가 분식회계를 지시하는 등에 대해서는 지금도 민법상 손해배상책임이 적용되고 있고 이는 대우 재판에서도 드러나는 그대로다. 회계는 제도의 안정성이 다른 어떤 분야보다 중요하다. 외국의 제도를 짜깁기 식으로 얽어놓는다고 해서 회계정보의 신뢰성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고 법 조문을 여기저기 늘어놓는다고 해서 법적 책임이 더 무거워지는 것도 아니다. 요란하게 발표된 이번 회계제도 개혁방안은 그런 점에서 적지않은 문제가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