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가 한달 뒤로 다가왔다. 5년 전 지금,나라경제는 벼랑으로 떨어지는데도 '경제는 아랑곳 없는 선거열풍'에 짜증을 냈었는데 이번에는 웬일인지 조용하다. 서민들은 지쳐 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가'가 아니라 '누가 대통령이 되면 우리를 보다 편하고 잘 살게 해 줄 것인가'하는 것인데,이런 후보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경제는 대통령임기를 주기로 돌아가고 있다. 대통령임기 초기에는 경제난 타개에 주력,어느 정도 회복될 무렵 임기 말이 되고 각종 비리가 터지면서 경제는 추락해 다음 대통령에게 수습책임을 넘긴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정부가 뭐라고 해도 이미 국민들은 다가오는 '경제한파'에 대비하고 있다. 소비를 줄이고,국내는 물론 해외경제 동향에 눈을 돌리고 있으며 정치는 뒷전이다. 피부로 느끼는 경기는 '초겨울'이 아니라 '한겨울'이다. 이번에 나온 대통령 후보들의 공약 역시 과거에 비해 크게 나아진 것은 없다. 그 중에서도 경제부문의 공약은 뚜렷하지 않거나,당선될 만한 후보들 간에는 큰 차이 없이 수사(修辭)만 다르다. 대통령은 경제전문가를 발탁해서 장관으로 쓰면 될 뿐이지 자신이 경제전문가일 필요는 없다고도 한다. 언뜻 보면 맞는 말이다. 박정희 대통령 역시 군인 출신이었지 경제전문가는 아니었다. 당시 정치면에서 독재자로 불렸던 그는 사후에 우리 경제를 살린 사람으로 추앙 받고 있다. 혹자는 박 대통령의 장기집권으로 이런 일이 가능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필리핀의 마르코스는 어떻게 된 것인가? 대통령은 각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최종 결정권자로서 높은 판단능력을 요구한다. 더구나 새 대통령은 당장 미국이나 일본에서 시작되는 세계경기 침체의 영향을 최소한으로 차단할 책임이 있다. 또 디플레이션을 유발할 지 모르는 세계경제 문제에 정면으로 대응해야 한다. 특히 이번 정부가 경제위기를 극복한 것을 최대 치적으로 삼고 있지만,경제위기를 자초했던 근본문제는 해결하지 못한 채 다음 정부에게 물려주게 돼 위기감은 높다. 정권 말기의 누수현상이라고 하기에는 노사분규나 정부부처 간의 이기주의가 심각한 상황이다. 이번 정부의 의약분업 실시에 따른 사회적 혼란이나,근로자와 경영자가 각기 이유는 다르지만 서로 싫어하는 주5일 근무제도의 정부 법안과 같은 사례에서 후보들은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특히 '선거공약이기 때문에 무조건 지켜야 한다'는 바보 같은 정책결정은 없었으면 한다. 오히려 더 좋은 정책이 있다면 바꾸는 용단이 필요하다. 임기 5년 단임제의 장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다음 정권으로의 연장이나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확고한 정책판단이 필요한 것이다. 대통령은 정책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더 중요한 정책결정자로서, 제시된 각종 의견을 판단해서 결정할 책임이 있다. 앞의 정부가 택한 의견이라도 틀린 것은 과감하게 바로 잡아야 한다. 이제 우리 국민들은 실천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후보 중에서 골라야만 하는 어려움을 안고 있지만, 이런 후보를 고르는 것은 어떨까. 첫째,경제발전의 비전과 장기전략을 국민에게 설득하고 이끌어 갈 수 있는 추진력을 겸비한 사람. 둘째,최소한 인사청문회를 통과할 수 있는,국민의 신뢰를 받는 경제 수장을 발탁하는 넓은 안목을 갖춘 사람. 셋째,자신의 보호에 급급한 각 계층들을 통합하고 조정하면서 민주화를 이룩할 수 있는 사람. 넷째,국민의 일시적인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장기적인 정책추진으로 임기 말에 신뢰를 재확인할 수 있는 사람. 끝으로 자신의 부패문제에서 자유로우며 정책판단을 그르치지 않을 판단력을 갖춘 사람. 이런 사람이 당선돼 임기 말에 '연임시키자'는 국민적인 데모가 왕성하게 일어나는 상황이 생기는 이것은 정녕 꿈일런가? 이제 우리들도 이런 사람을 뽑기 위해 대통령 선거에 보다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는 자기가 원해서 대통령이 되는 것이 아니라,국민이 원하는 대통령이 당선돼야 한다. 훌륭한 대통령을 뽑을 근본적인 책임은 유권자인 우리에게 있다. kesopyun@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