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체에 있다 장관으로 가면 누구보다도 기업의 애로를 잘 챙겨줄 것 같은데 그것도 아닌가 보다. '잘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는 말은 이런 걸 두고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요즘 정통부를 보면 정말이지 '산으로 가는 건지, 강으로 가는 건지' 명확하지가 않다. 이상철 장관은 KT 사장에서 정통부 장관이 됐다. 정권 말기이지만 그래서 더 중요한 시기에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그 이유 중에는 과도기에 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을 것이라는 기대를 빼놓을 수 없다. 그가 취임 후 통신시장 3강체제를 무리하게 고집하지 않겠다고 했을 때만 해도 기대대로라는 느낌을 줬다. 하지만 기대가 깨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기업들엔 '다행'이 아니라 되레 '불행'이 되고 있으니 말이다. 이 장관은 요금인하를 IT펀드를 조성하는데 활용토록 하겠다고 했고, 우여곡절끝에 그 결실이 나왔다. 말 그대로 정보산업 발전을 위한 선순환적 선행투자라면 시장의 반응이 적어도 나빠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반응은 반대였다. 증시에서는 마치 기업이 원치않는 투자를 강요받고 있는 것 아니냐는 평가를 내린 게 아닐까. 단말기 보조금에 대한 영업정지만 해도 그렇다. 위반했으면 제재를 받는 것이야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정부가 모든 것을 규제위주로만 접근하려는게 아니냐는 점에서 실망이 큰 것 같다. 사실 단말기 보조금 문제의 악순환에는 기업 경영전략에 속한 사항까지 정부가 무조건 금지하려는 무리한 측면도 분명히 있다. 특히 기업 경영자 출신이 장관이 됐는데도 그러니 실망이 더한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한국에서는 투자 요금 마케팅 등 통신회사 경영활동의 핵심사항을 정부가 좌지우지하느냐"는 질문 아닌 질문도 나오는 모양이다. 어떤 외국인은 한국의 통신회사에는 '보이지 않지만 힘있는 경영자'와,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하는 '드러난 경영자'가 따로 있느냐는 얘기도 한다. IT 강국이라는 나라의 정부 모습이 꼭 이래야만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안현실 논설ㆍ전문위원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