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국제사회와 맺은 약속을 어기고 핵개발을 추진했다고 시인했다. 이 소식에 전 세계는 충격에 휩싸인 모습이다. 그러나 '핵개발 시인 발표'는 북한이 전략적인 정책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해석해야 한다. 북한의 이같은 발표는 한반도의 긴장 완화에 도움을 줄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은 '공산주의'라는 도그마를 바탕으로 수립된 국가다. 휴전선 인근에 집중적으로 배치된 1백만명의 군 병력을 감안하면 세계에서 가장 군국주의적 정권이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북한은 지난 수십년간 경제적 쇠락의 길을 걸어야 했다. 반면 남한은 미국과의 견고한 동맹관계를 활용하면서 국가 번영을 거듭해 왔다. 그 결과 남북한간 격차가 점점 크게 벌어지자 북한은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의 통일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이제 북한 정책 당국자들은 두 가지 선택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 첫째는 한반도 주변의 전략적 환경이 북한에 유리하게 변할 때까지 지연 작전을 펴는 것이다. 둘째는 공산주의 체제가 잘못이었다고 과감하게 선언하고,북한 정권의 새로운 전략 목표를 수립하는 일이다. 두번째 길을 선택 할 경우 북한은 '자력부강'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을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이 지난 4개월간 다양한 경제개혁 방안을 발표한 점도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북한은 한반도 밖까지 사정거리에 넣을 수 있는 운반시스템과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투자가 이른바 '이중 억지력(double-sided deterrence)'을 제공할 것이란 계산도 갖고 있다. 대규모 재래식 병력배치는 더이상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얘기다. 사실 지나치게 많은 재래식 병력을 보유하는 것은 북한으로서는 커다란 부담이다. 이들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경제적으로 엄청난 고민거리다. 이달초 북한이 50만명의 병력 감축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발표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절반 가량의 군 병력을 해산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무엇보다 군인들이 돌아갈 자리를 마련해줘야 한다는 게 급선무로 꼽힌다. 북한에는 노동집약적 기술이 필요한 인프라 건설수요가 매우 많기 때문에 병력 감축과 경제 개혁을 연계시키면 커다란 효과를 볼 것으로 분석된다. 국제사회는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 제한,재래식 병력 후방 배치를 요구하고 있고 북한은 국제사회의 지원을 필요로 한다. 때문에 북한은 한국에 대해선 재래식 병력 문제,일본에는 중거리 미사일 문제에 대한 협상을 제의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에 대해서는 대량살상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문제를 들고 나와 한·미·일간의 대북 정책상 혼선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북한이 대량살상무기나 미사일을 수출하지 않는 한 국제사회는 협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가 돼 있다. 이라크와 달리 북한은 지난 50년간 다른 나라를 침공을 하지 않았다. 지난 20년간 테러를 저지른 일도 없다. 북한이 대량살상무기 및 병력의 감축과 경제개혁을 함께 추진한다면 지금보다 '덜 위협적인' 국가로 비쳐질 것이다. 정리=유영석 기자 yooys@hankyung.com -------------------------------------------------------------- ◇이 글은 마커스 놀랜드 미국 국제경제연구소(IIE) 선임연구위원이 파이낸셜타임스에 기고한 칼럼 'Striking a deal with North Korea'를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