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시대 중국을 다녀온 사신에 의해 전래된 "라멘"은 일본의 국민음식이다. 국제식품규격위원회에 "라멘"이라는 명칭과 규격을 요구할 정도로 일본인들의 "라멘"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다. 홋카이도의 "삿뽀로 라멘",오사카의 "금룡라멘" 그리고 후쿠오카의 "하카다라멘" 등 각 지역을 대표하는 라멘들이 비밀스런 조리 비법을 간직한 채 포진해 있다. 돼지뼈 육수와 노란 생면으로 상징되는 일본의 라멘은 목살과 갈비 부분의 삼겹살을 간장에 달여 만든 "짜슈"와 죽순 조림 "멤마"가 공통적인 고명으로 올라온다. 면의 색깔이 노란 이유는 밀가루 반죽에 간수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운 노란 면을 씹으면 쫄깃하다. 겨울 저녁 우리의 메밀묵 장사들이 "메밀묵 사려"를 목청 돋워 외칠 때 일본의 포장마차 라멘 장사들도 "차르멜라"라는 나팔을 불며 이 골목 저 골목을 누볐다. 찬 공기가 무겁게 내려 앉은 겨울 저녁,한 손으로 그릇을 받치고 후후 불어가며 먹던 그 시절의 라멘 맛을 요즘 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이다. 겐조라면(신촌로터리에서 연세대학교 방향 3백m 지점,02-393-3579)=한국인 입맛에 잘 맞는 육수를 바탕으로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라멘 전문점. 돼지의 뼈와 고기만으로 육수를 만드는 다른 집과는 달리 소고기와 닭고기를 추가한 것이 육수 맛의 비결. 소금으로 간을 맞춘 "시오라멘"에는 김,돼지고기,죽순이 고명으로 오르는데 면과 함께 죽순을 입에 넣으면 아삭거리는 특유의 질감이 시원하다. 서너 점 얹혀 나오는 간장에 달인 돼지고기 "짜슈"는 고소하다. 담백한 국물과 부드럽게 씹히는 맛이 잘 어울린다. 노란 생면과 같이 즐기는 김도 별미다. 아쉽게도 김은 두 조각 밖에 나오지 않지만 기름기 있는 라면의 뒷맛을 담백하게 한다. 간장으로 간을 한 "쇼유라멘"은 기본적인 고명은 동일하지만 삶은 달걀을 썰어 올리는 것이 보기에도 먹음직스럽다. 느끼해지기 쉬운 국물 맛을 고소하게 변화시키는 역할도 한다. 지나치게 짜지 않고 달달한 육수 맛이 괜찮다. 규슈라멘(압구정동 갤러리아 백화점 명품관 건너편,02-548-7341)=깔끔한 인테리어와 넓은 매장으로 강남 지역 라멘 매니아들에게 사랑 받는 집.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종류가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돈꼬쓰라멘"과 "버터라멘"이 색다른 맛이다. 잘게 썬 파와 깨,생강,짜슈가 듬뿍 오르는 "돈꼬쓰라멘"은 특유의 돼지냄새 때문에 한국인들은 꺼리는 경우도 많지만 일본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은 이 맛을 잊지 못한다. 구수한 국물을 한 모금 마시고 면과 생강을 입 안 가득 넣으면 가장 일본적이라는 그 맛에 반하게 된다. 간장을 기본으로 맛을 낸 육수에 버터를 올려 내오는 "버터라멘"은 야채와 간장이 빚어내는 단맛과 버터의 고소함 그리고 숙주의 아삭거림이 잘 어울린다. 뜨거운 육수에 서서히 녹아 내리는 버터는 시간이 지날수록 농도가 진해져 색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바바(한국은행 본점에서 남대문 방향 2백m,02-776-0501)=유학시절의 라멘집 아르바이트가 인연이 되어 장사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작지만 알찬 라멘전문점. 고춧가루로 버무린 파무침을 한 주먹 올리는 "네기라멘"은 다른 집에서는 쉽게 발견할 수 없는 메뉴. 기름진 국물에 알싸한 파 무침이 양볼에 침을 고이게 한다. 고명을 휘휘 저어 섞은 후 한 젓가락 입에 물면 파 향이 은은하게 퍼진다. 시원한 국물 맛이 속을 쓸어내린다. 김,짜슈와 곁들이면 또 다른 담백함을 맛볼 수 있는 독특한 라멘. 일본 라멘에 대해 느끼하다는 선입견을 가진 사람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다. 김유진.맛 칼럼니스트.MBC PD showboo@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