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아파트 담보대출을 받기 위해 은행을 찾았던 L씨(54)는 은행 문을 빈 손으로 나와야 했다. 인천 부평의 시가 1억2천만원짜리 아파트를 담보로 7천만원을 대출받으려 했던 그는 일정한 수입이 없다는 이유로 대출을 거절 당했다. 직장인 C씨(38)도 은행에서 2천만원 신용대출을 받으려 했다가 포기했다. 지난 여름 신용카드 대금 2백50여만원을 연체했던 사실을 조회한 은행 창구직원은 "카드 연체 전력이 있는 사람에겐 돈을 빌려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 담보만으론 부족하다 은행들의 가계대출 심사에서 최근 크게 바뀐 것은 담보 외에도 대출금을 갚을 수 있는지 여부를 철저히 따진다는 것. 실제로 국민 우리 등 주요 은행들은 가계대출 심사때 담보 외에 이자상환 능력을 점검하고 신용카드 연체 정보를 적극 활용하는 등 까다로운 기준을 속속 도입하고 있다. 국민은행은 지난달말 전산통합 과정에서 신용평가 모델의 평점기준을 강화한데 이어 과거 신용카드 연체 흔적이 있는 사람에겐 신용대출 심사를 엄격히 하고 있다. 우리은행도 가계대출 때 담보 뿐아니라 돈을 빌리는 사람의 실질 소득(총소득-가계지출액)을 산출해 이자를 갚을 능력이 있는지를 따지기로 했다. 이에 따라 아파트 담보를 넣더라도 실질소득이 없는 무직자나 전업 주부 등은 대출을 받을 수 없게 된다. 하나은행은 이미 지난달말부터 금리나 담보기준가 등을 보수적으로 변경해 가계대출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다. 때문에 이달들어 지난 20일까지 하나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액은 3백9억원에 머물렀다. 이는 비슷한 규모인 신한은행의 6분의 1 밖에 안되는 증가액이다. 이밖에 신한 조흥 외환은행 등도 주택담보 최고 인정비율을 50∼60%로 낮추는 한편 가계대출 심사 기준을 강화해 대출한도를 줄이고 있다. ◆ 고객 불만 터져 나와 은행들이 가계 대출심사를 갑자기 까다롭게 하기 시작하면서 일반 고객들로부턴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경기도 일산에 사는 H씨(41)는 "한달전만 해도 옆집 사람들은 똑같은 평수의 아파트를 담보로 넣고도 1억원 이상의 대출을 받았는데 어느날 갑자기 대출 액수를 턱없이 줄이고 이자를 더 내라고 해 은행 직원과 실랑이를 벌였다"고 말했다. 거래 은행에 주택담보 대출을 신청했다가 소득증명을 요구받았다는 K씨(56)도 "은행 문턱을 이렇게 높이면 서민들은 결국 사채시장으로 갈 수 밖에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금융계 관계자는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도 최근호에서 '한국의 가계부채는 심각한 수준이 아니다'라는 분석기사를 냈다"며 "너무 급작스런 가계대출 축소는 소비 위축 등 부작용만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차병석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