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암참) 설립 이후 가장 주목받았던 제프리 존스 회장이 오는 12월 퇴임한다. 존스 회장은 힘들다는 1년 임기의 암참 회장직을 4년이나 채우는 기록을 세웠다. 지난 98년 전임자가 못 마친 임기를 이어받아 99년 정식으로 회장이 됐고 2001년 재선출된 뒤 한 차례 연임했다. 수입차 시장 개방과 하이닉스 및 대우차 처리 같은 민감한 사안에서는 충실한 '미국 이권의 대변인'으로서, 평소에는 한국을 '우리나라'라고 말할 정도의 '한국 옹호자'로서 전례없는 관심을 끌었다. 그는 "섭섭하지만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고 퇴임의 변(辯)을 대신했다. "큰 사고 없이 임기를 마칠 수 있게 돼 정말 다행입니다. 암참 안에서 새로운 시도들이 많은 마찰을 낳았죠. 실직자를 위한 재단(미래의 동반자)을 제안했을 땐 '여력이 없다'는 반대에 부딪쳤고 했고 암참 회장 처음으로 기자 회견을 열었을 땐 '왜 튀려고 하느냐'며 부정적인 시선을 보낸 회원들도 많았어요. 변화를 싫어하는 것은 사람들의 본성이지만 옳은 길을 갔다고 생각합니다." 나름대로 '큰 사고'가 있었다면 수입차 개방 문제였다고 그는 회고한다. "2년전 쯤인가 워싱턴에서 한국에서 미국 차가 안팔리는게 한국 정부 탓이라고 하길래 '너네들'이 시장 접근을 잘 못해서 그런거라고 했다가 사임 압력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전 수입차 업체들을 설득하려고 노력했고 결국 그들의 태도를 변하게 만들었어요." 변화를 주도한 것은 그가 가장 보람있게 느끼는 부분인 듯 했다. "'당신 때문에 생각이 변했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이 나라에서 외국인이 영향력있는 인사가 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죠. 저는 청와대에 초청받는 최초의 암참 회장이었고 암참을 영향력있는 단체로 만들었다는게 뿌듯합니다." 존스 회장은 역대 암참 회장으로는 처음으로 대규모 기자회견을 열었고 각종 강연을 통해 끊임없이 뉴스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불편했다"고 말했다. "저는 뒤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지 나서는 것처럼 보이는 건 정말 싫어요. 가끔은 동물원 원숭이나 큰 코끼리가 된 기분이 들었고 어디를 가더라도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특히 한국에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게 좋지 않지요. 쉽게 공격의 대상이 되고 시기의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는 미국과 한국의 경제적인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마다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기 때문에 미국의 아이콘같은 인상을 풍겼다. 때문에 그 스스로 많은 사명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특히 강연을 많이 한 것은 '미국인이라고 해서 다 나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었다고 한다. "한번은 대학에서 강연하다 '왜 모두가 미국인을 싫어하는 것 같으냐'는 질문을 받았어요. 사실 한국인 개개인, 특히 젊은이들이 유독 미국 문화를 좋아하는 편인데 국민 전체적으로는 반감을 갖고 있어요. 미국은 개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많은 대가를 지불했고 저는 미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끼지만 자신들의 잣대를 세계 최고라고 진정으로 믿고 있는 건 미움을 살 만하다고 생각해요. 다른 나라에 와 보니 미국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게 되는 동시에 미국식(American way)이 전부가 아니란 걸 알 수 있겠더군요." 암참은 퇴임과 함께 한국을 떠나지 않는 첫 케이스인 존스 회장을 위해 명예회장 자리를 하나 더 만들었다(현재 명예회장은 토머스 험버트 주한 미국대사). 존스 회장은 "퇴임 후 암참 명예회장과 한국관광공사 사외이사로 남아 많은 투자와 관광객을 한국으로 끌어오는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관광산업을 부흥시키고 싶어요. 한국은 놀거리가 부족하죠. 전라남도를 예로 들면 해안과 수많은 섬들이 너무나 아름다운 데도 그외엔 할 것이 아무 것도 없어요. 지금은 기획단계인데 관광공사와 함께 전남에다 해양생활을 체험할 수 있고 쇼핑과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해양 테마파크를 만들겁니다." 그는 한국이 아시아의 허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태도만 바꾸면 됩니다. 우리(한국인)는 돈과 사업을 의심하는 경향이 있는데 비즈니스를 좋아하는 법을 배워야 돼요. 정부와 언론은 규제하고 컨트롤하는데 익숙하지만 리더십만 있으면 된다는 걸 깨달아야죠. 사업가는 좀더 정직해져야 하고요. 하지만 김영삼 대통령 시절만 되돌아 보더라도 기업 환경 측면에서 한국이 얼마나 빨리 변하는 나라인지 알 수 있어요. 기다려 보세요. 한국이 허브가 될 테니까." 제프리 존스는 몰몬교 선교사로 1971년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그는 한국을 냄새로 기억한다고 했다. "71년 8월15일이에요. 푹푹 찌는 날씨였죠. 김포 공항에 내렸을 때 먼지 마늘 거름냄새가 뒤범벅된 냄새에 압도됐는데 이상하게도 익숙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전 불교도가 아니지만 전생이 있었다면 분명히 한국에서 살았을 거라고 늘 생각하죠." 그는 2년 후 한국을 떠났지만 10년이 채 안 돼 변호사로 다시 한국에 돌아왔다. "언제나 다시 돌아올 걸 알고 있었어요. 이곳이 집이고 가족도 이곳에 있으니 여기서 평생 살겁니다. 정 들었어요."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