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에 술집에서 '정시' 퇴근하고 한 달에 열번 이상은 '룸살롱'에 가는 남자. 이런 직업이라면 남자로선 해볼 만할까. 영국 얼라이드 도멕과 진로가 7 대 3으로 합작해 세운 진로발렌타인스의 영국인 사장 데이비드 루카스는 자신의 직업이 '최고의 직업'이란다. "술 마시고 음악 듣고 수다 떨면서 월급받는 거예요. 전화기나 테이블을 팔라고 했으면 못했을텐데 술은 '진짜 삶'이죠." 얼라이드 도멕에서 재무를 담당했던 루카스 사장의 삶은 3년 전 한국에 온 후 술집에서 새롭게 시작됐다. "위스키를 파는 사업은 시장을 읽고 사업 아이디어를 얻는데, 마담이 들려주는 얘기가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한 달에 열 번 이상은 룸살롱에 가고 웨스턴 바에도 자주 갑니다. 시장과 가까이 있어야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은 어느 사업이나 마찬가지죠." 그의 우리말 수준은 명함에 적힌 마담 이름을 읽어내 친해지는데 도움이 되는 정도여서 술집에 갈 때는 종종 여성 통역을 대동한다. 폭탄주와 룸살롱이 상징처럼 돼버린 한국의 술문화가 독특하지 않으냐고 그에게 물었다. "이미지가 안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위계질서나 서열이 엄청난 스트레스를 만들어내는 이곳 조직 문화에서 사람 사이의 벽을 허무는 아주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단다. "모두를 같은 레벨로 끌어내리는 거예요. 이런 분위기에서 평소 상사에게 못했던 말들을 할 수 있는 거죠. 때문에 한국의 술 문화는 목적면에서 다른 나라보다 심각한 것 같아요." 루카스 사장에게 술집 방문은 다른 의미에서 심각하다. 해가 지면 진짜 일이 시작되는 그의 업무량은 하루 평균 18시간에 달할 정도로 팍팍하다. 그는 폭탄주를 10잔 마시고 '똑바로 일어설 수 있을 만큼' 술이 세지만 사업상 마셔야 하는 술자리가 워낙 많아 '우롱차에 위스키를 타 마시는 트릭'으로 버텨낸다. "제 직업의 최대 단점은 두 살짜리 꼬마 애 얼굴 볼 기회가 적다는 거예요. 가족들에겐 아주 힘든 비즈니스죠. 특히 술 냄새 풍기며 허구한 날 새벽에 들어오는 남편을 아내(그는 이곳에서 만난 한국 여성과 3년전 결혼했다)가 이해하기까진 오랜 시간과 대화가 필요했어요." 지금까지는 그의 노력이 보상을 받았다. 역사가 3년이 채 안됐지만 진로발렌타인스는 설립일부터 줄곧 국내 위스키 시장 1위(현재 점유율 31%)를 지켜 왔다. 발렌타인 17년의 위상은 굳건하고 임페리얼은 해마다 판매가 두배씩 뛰었다. 시장도 활황이다. 올해 국내 위스키 소비 증가율은 15%로 지난해에 이어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할 전망이다. 하지만 도전도 만만치 않다. 디아지오코리아의 베스트셀러 딤플이 버티고 있는데다 두산과 하이트맥주가 잇따라 위스키 시장에 뛰어들어 경쟁이 가열됐다. 미국.이라크 전쟁 가능성과 12월 대선은 위스키를 포함한 소비 심리를 냉각시킬 가능성이 크다. "마켓 리더의 책임은 가파른 시장 점유율 추구보다는 시장표준 정립에 있어요. 게다가 불확실성이 많은 지금 같은 때에 우리가 경쟁사의 공격적인 광고 집행을 따라갈 수는 없죠. 다만 지속가능한 성장과 경쟁력 유지를 위해 시장 흐름을 예의 주시하는게 중요한 때입니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