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에 훈령을 요청한지 13시간이 지났지만 결정권을 가진 사람은 자리에 없고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습니다. 답답하네요."(농림부 관계자) "정치권도 정부도 그야말로 공백상태입니다. 이리저리 줄대느라 바쁜 건지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은 안중에도 없습니다."(한나라당 K보좌관) 21일 오후4시. 3년간 끌어온 한·칠레 FTA가 투자분야 금융서비스 분야와 관련,양측 의견이 첨예하게 맞서며 타결 여부가 불투명해진 가운데 국회와 농림부 관계자는 이렇게 토로했다. 며칠전까지만도 곧 타결될 듯했던 협상은 칠레 정부가 느닷없이 금융서비스 분야를 예외 항목으로 할 것을 고집하며 다시 안개속에 빠졌다. 이성주 외교부 다자통상국장이 수석대표를 맡은 한국 대표단은 문제가 국장 수준을 넘어선 것으로 판단,즉각 본부로 몇 가지의 협상 패키지를 만들어 최종 결심을 위한 훈령을 21일 새벽 3시(현지시간 20일 오후 8시)께 요청했다. 그러나 시간은 계속 흘렀지만 본국으로부터 아무런 답변도 오지 않았다. 국가적 결단이 필요한 상황에서 관계장관회의가 소집되기는커녕,해당 부처 장관들의 개별 입장조차 정리되지 않았다. 예산결산심의를 위해 21일 오전 국회를 방문했던 전윤철 경제부총리가 부랴부랴 정부 입장을 정리해 외교통상부에 통보한 게 낮 12시30분께였다. 여기에 훈령권을 쥐고 있는 최성홍 외교통상부 장관과 이를 대리하는 황두연 통상교섭본부장은 멕시코 APEC 각료회의로 이달말까지 자리를 비우며 보고 체계에 혼선이 생긴 것. 정치권도 분위기는 마찬가지였다. 자민련의 한 보좌관은 "지난 18일 농림해양수산위원회에서 농림부가 한·칠레 FTA 관련 우리측 양허안을 밝힐때 얼굴을 비친 의원은 전체 위원회의 절반도 안되는 5∼6명정도 였다"며 "이런 무관심 속에서 FTA협상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신기할 정도"라고 말했다. 이번 한·칠레 FTA는 한국이 '열린 통상국가'로 올라서는 첫 발판이라는 점에서 뜻하는 바가 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부의 한건주의와 정권말 레임덕속에서 탄생한 어줍잖은 FTA로 인해 정작 피해를 보는 쪽은 힘없는 국민들이라는 점이 씁쓸하다. 임상택 사회부 기자 lim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