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신문을 대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이 답답함을 어찌 달랠까. 전통사회에서는 하는 일이 잘 안풀릴 때 고사를 올리거나 굿판을 벌였다. 액운을 몰아내고 행운이 오도록 천지신명에게 바치는 음식을 차려놓고 비는 무속의식의 유래는 오래다. 삼한시대부터 나라에서 주관하는 영고 동맹 무천 등 무속의식이 있었는데,고려시대에 이르러서는 무속이 더욱 번성했다 한다. 조선시대에는 초기부터 유교이념의 영향으로 불교와 무속을 억압했으나,오늘날에도 민간에서는 길흉대사나 답답한 일이 있을 때 무속인의 조언을 구하는 이들이 많다. 답답한 게 많은 모양이다. 과학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21세기 초,IT(정보기술)를 비롯한 각종 T자 돌림의 혁신들이 빠른 템포로 진행되는 이즈음에도 지구온난화 등 대자연의 힘 말고도 인간의 이성으로 쉽사리 해결·극복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이는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그래서 논리보다 직관에 판단을 맡기게 되고,종교에 귀의하는 인구가 늘고,무속에 빠지는 사람도 생기게 된다. 광복 이후 한국사회의 발자취를 살펴보면 냉철한 이성으로 차분하게 평가하기에는 너무 뜨겁고 혼잡스러운 대목들이 많았다. 길게 잡을 것 없이 이른바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경제의 궤적이 바로 그러했다. 80년 신군부의 파행적 정권쟁탈 이후 권위주의 정권 아래서도 굳세게 민주화 열풍의 선봉에 섰던 두사람의 주역들이 국가수반의 자리에 오른 것은 역사의 바른 흐름이었고,군사정권 종결은 이루어졌다. 잘 된 일이다. 그러나 장군 출신이 아닌 직업정치인이 집권했다는 사실 이외에 달라진 점이 무엇인가. 요즘 '제왕적 대통령'이란 말까지 나돌 만큼 권위주의 정치는 예나 다름없다. 청와대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부리고 있어 진정한 민주화와 행정 효율화에 역행하고 있다는 얘기다. 정권의 청렴도는 어떠한가? YS와 DJ,두 '민주'대통령 시대가 전·노 두'군사'대통령시대와 비교해 파행·비리·의혹이 적었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국민의 기억상실증이 문제이긴 하지만,적어도 친인척의 금전문제에 있어서 박 대통령에 비해 두 김 대통령이 윗자리에 서지 못한다. 거시경제 운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세계 최빈국에서 상위국 대열에 진입,산업구조의 근대화,북한과의 경제력 대결에서 우위확보 등을 이룩한 것이 권위주의 정부시대의 업적이라면,민간 정부시대의 성과는 무엇인가. YS시대에는 취임 초 '100일 작전'등 경기부양책으로 경제에 거품을 일궈 임기 말에 외환위기를 초래했다. 위기 속에 승계한 DJ정부는 국제통화기금의 구조개혁조건을 수용해 외환보유고 축적,금융산업개혁,민간기업의 지배구조개선 등에 진척을 이룩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공기업 개혁은 지연되고,노동시장은 유연성 제고는 커녕 경직성 강화 쪽으로 기울고,의약분업과 같은 실효없는 개혁들에 힘을 쏟았다. 상호주의 원칙을 무시한 대북정책은 군부 및 민간의 안보의식을 위험수위로 몰고 갔다. 경제적 번영은 굳건한 안보의 토양 위에서만 피는 꽃임을 잊고 있다. 그래도 얼마전까지는 현 정부가 경제위기극복의 공을 자랑할 수 있었다. 위기극복의 필수 불가결한 요건 중 하나는 금융회사 및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높이는 일이다. 아무리 선의로 볼래도 산업은행의 현대상선 4천억원 융자건은 납득할 수 없는 매우 수상쩍은 사건이다. 산업은행은 국제금융시장에서 국가와 동일한 신용등급을 받는다. 바로 국가신용도에 치명타를 가하는 일이 벌어진 셈이다. 자칫 언젠가 경제위기의 빌미가 될까 우려된다. 정부의 주5일 근무제 도입 감행도 역시 그러하다. 이래서 잡귀와 오귀를 쫓는 굿거리 한마당이 필요하다. 그동안 이런 저런 자리에서 국민경제의 활력을 사물로 탐닉만 하던 세력들을 물리치는 굿판 말이다. 어느 굿판에서 보고 들은 무당 춤사위와 사설이 기억난다. '너도 먹고 떨어지고,너도 먹고 떨어져라.쿵덕 쿵덕쿵.' 오늘날의 굿판은 대통령 선거다. 국민은 굿도 보고 떡도 먹을 안이한 생각일랑 버리고,국민경제를 바로 세울 사람을 뽑아야 한다. 경제사회 기본질서가 세워져야 한다. pjkim@ccs.sog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