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12월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추진위원회가 구성되고 99년 12월 칠레정부 대표단과 제1차 공식협상을 시작한 지 약 3년 만에 우리로서는 최초의 FTA 체결을 눈앞에 두고 있다. 양국간 무역구조는 전형적인 부존자원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산업간 무역형태를 띠고 있어 우리가 경쟁력을 갖춘 제조업분야에서 추가적인 수출증대효과가 기대되는 반면,우리의 전체 수출규모와 맞먹는 구리를 비롯한 광물 수입 뿐만 아니라 포도 어류 등 일부 농수산물 수입 증가도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유사 산업부문에서 경쟁구조가 심화되는 데 따른 문제점이나 효과가 그리 클 것으로 전망되지는 않고 있다. 또 칠레와의 FTA 체결로 유발될 무역전환효과를 감안하면 국내경제 전반이나 우리의 무역에 미칠 경제적 효과가 단기간내에 그리 크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칠레 FTA 타결은 우리의 향후 통상구조에 지대한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67년 4월 GATT에 가입함으로써 다자간 무역체제를 중심으로 한 우리의 통상정책을 운용해 왔고,이후 세계무역기구(WTO) 체제하에서 현재까지의 통상구조를 발전시켜 왔다. 그간 일관된 우리의 입장은 양자간 특혜무역관계를 지양하고 비차별적인 다자간 무역관계를 견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재 전세계적으로 발효 중인 1백72개에 달하는 지역무역협정 중 1백29개가 WTO체제가 발족된 95년 이후에 체결된 것이라는 점은 우리에게도 다시금 현실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실질적으로 양자간 FTA를 타결한 것은 우리 통상정책의 기조와 수단이 대폭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시금석이다. GATT 체제하 경제성장기의 우리 통상정책은 일방적인 수출진흥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67년 GATT 가입 직후부터 90년까지 우리는 국제수지 방어를 이유로 수입시장개방을 지연하고 있었으며,수입선다변화제도 등 제반 수단으로 수입시장을 닫고 있었다. 그러나 WTO체제의 발족으로 전면적인 수입개방을 겪으면서 통상문제가 '주고 받는' 양면적인 문제임을 실감하게 되었고,얼마나 어떻게 줄 것인가 하는 통상문제는 기본적으로 다양한 경제이해의 정책조율에 관한 핵심적인 국내 경제문제임이 부각됐다. 이제 우리로서는 지난 4년간의 산고를 거쳐 양자간 FTA를 체결해 시장을 개방하는데 따르는 다양한 이해관계 조정과 국내 정책조율에 관한 중요한 교훈과 자신을 얻게 된 셈이다. 이미 우리는 칠레와의 FTA를 필두로 한·일 FTA 가능성을 산·관·학 합동연구회를 통해 타진하고 있으며,멕시코 아세안 뉴질랜드 중국 미국 등 주요 교역상대국들과의 FTA 가능성에 대해서도 검토하고 있다. 우리도 이제 다자간 통상규범과 틀 속에서 통상체제를 운용함과 동시에 우리 기업 및 산업의 경제이해에 비추어 적극적으로 FTA 전략을 활용하는 다원적인 정책이 필요할 것이다. 향후에 우리가 고려하는 FTA 상대국 중에는 칠레와 다르게 전면적인 산업구조조정을 수반해야 하는 국가도 포함되어 있다. 더욱이 FTA와 같은 무역개방화조치는 필연적으로 국내의 취약한 산업부문을 외국으로부터의 경쟁력 있는 상품에 노출시킴으로써 국내의 산업 구조조정 문제를 심화시키게 되어 있다. 또 FTA 논의는 WTO 차원의 논의와는 다르게 상호간 득실이 극명하게 비교돼 부분적인 이해불균형 문제가 크게 부각됨으로써 과도하게 정치적인 고려가 경제적인 판단을 압도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문제를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체제를 정비하는 것이 앞으로 우리에게 남은 과제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 및 산업부문의 총체적인 이해를 파악하고 반영할 수 있는 효율적인 체제가 마련되어야 하며,시장개방에 따르는 구조조정 지원방안이 확보되어야 한다. 경제 전체적으로 긍정적인 경제파급효과가 나타나더라도,예를 들어 무관세화된 자동차 수출 증대에 따른 혜택이 포도수입 증가에 따른 국내 농업부문의 손실을 적절하게 보전하는 방안이 마련되지 않는 한 경제적인 판단이 정치적인 부담을 감당해 내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dahn@kdischool.ac.kr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