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봄.여름 패션 트렌드를 미리 보여주는 "파리 프레타포르테 컬렉션"이 지난주 끝났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브랜드 1백30여개가 참가한 이번 컬렉션은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화려하고 축제적인 분위기 속에서 10일간 계속됐다. 행사 직전까지만 해도 세계경제 침체와 대 이라크 전운이 감도는 우울한 분위기가 반영될 것이란 예상이 우세했다. 그러나 마치 불운의 새가 둥지를 트는 것을 막아보자는 듯 디자이너들의 살풀이식 행위예술적 색채가 강했다. 특히 지난해부터 급속히 위축된 세계 명품시장의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듯한 유쾌한 쇼가 많았다. 이번 컬렉션에서는 무엇보다 "프레타포르테(기성복)의 오트쿠튀르(맞춤복)화"와 작품 소재를 과거에서 찾는 "레트로 리메이크" 경향이 두드려졌다. 또 "벗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입는 옷"이란 평을 들을 정도로 노출이 많았다. 전반적으로 마이크로 미니(micro-mini)가 강세여서 초미니 스커트와 핫팬츠도 많이 보였다. 재킷도 길이가 깡총해졌고 팬츠 허리선은 거의 배꼽 아래까지 내려갔다. 알렉산더 맥퀸=오트쿠튀르에 가까운 수작업 창작품을 선보였다. 파리 사이언스 시티 라빌레트에서 열린 알렉산더 맥퀸 쇼는 대형 스크린에 모슬린 천으로 몸을 감은 여인이 물속에 잠겨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슬로우 모션으로 보여줘 긴장감과 함께 관능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의상 소재는 모슬린과 실크 시폰이 주를 이뤘다. 레이스와 구별이 안될 정도로 섬세한 모티브의 가죽도 선정적인 여성미를 강조했다. 장 폴 고티에= 미국 모빌 조각가 알렉산드 칼더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고티에는 "그네를 타는 소녀"모델을 통해 여러 조각의 합성된 모빌적인 패션을 소개했다. 맥시와 미니의 동시적 조화도 강조했다. 헐렁한 점퍼와 콤비를 이룬 힙합 팬츠는 허리선이 히프 한가운데 겨우 걸릴 정도로 낮았다. 스커트는 두 장의 색종이를 양 허벅지에 각각 붙여놓은 듯한 초미니로 허리선이 거의 배꼽 10cm 아래로 내려갔다. 죤 갈리아노=복고풍의 레트로 리메이크 쇼를 연출한 디오르의 갈리아노는 울트라 페미니티 색채가 짙었다. 이번 쇼를 구상하느라 로스앤젤레스 영화사 자료를 뒤졌다는 갈리아노는 지하철 환풍구에 마릴린 몬로를 연상시키는 모델을 세워놓음으로써 헐리우드 전성기의 분위기를 재연했다. 작품 소재는 실크 저지와 모슬린,레이스,실크 베일,린넨,면 등.전체적으로 몸매 윤곽이 흐리고 흐느적거리는 듯 신비스러운 분위기였다. 초미니 핸드백도 많은 관심을 끌었다. 칼 라가르펠드=샤넬의 라가르펠드는 흑백의 조화에 절제된 모던미를 가미했다. 동시에 진주와 준보석으로 장식된 체인 같은 두드러진 액세서리로 눈길이 잘 가지 않는 부분을 강조했다. 샤넬의 트레드마크인 트위드 재킷을 비롯해 전체적으로 옷 길이가 짧아졌다. 파리=강혜구 특파원 bellissim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