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의 출범으로 세계시장이 개방되면서 그 저변을 움직이는 메커니즘으로 '국제표준'의 힘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기술장벽을 제거하기 위해 선진국은 2005년까지,개도국은 2010년까지 자국의 표준을 국제표준에 맞춘다는 합의도 이뤄져 있다. 지금까지 국제표준화기구(ISO와 IEC)에서는 1만8천여종의 국제표준을 제정했지만 이것만으로는 시장 수요에 턱없이 부족하다. 독일이 2만6천여종,미국이 1만4천여종,러시아가 2만3천여종의 자국 국가표준을 갖고 있는 것에 비하면 아직도 국제표준의 수가 너무 적다. 따라서 ISO와 IEC는 국제표준이 없는 제품에 대해서는 시장의 수요에 맞추기 위해 새로운 국제표준을 연 1천3백여종씩 만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세계는 선진국을 중심으로 자국의 기술을 국제표준으로 만들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국제표준으로 만들면 세계시장이 자국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세계시장이 국제표준으로 단일화돼 가면서 종전과 같은 1등제품과 2등제품의 구분은 없어지고,승자와 패자만 남게 된다. 승자는 세계시장을 독식하고 패자는 모두를 잃게 된다. 그야말로 '표준전쟁시대'라는 말을 실감케 한다. 지금도 지구 어딘가에서는 새로운 국제표준을 만들기 위한 기술위원회가 열리고 있다. 9백13개 기술위원회에서 1년에 1천3백여차례의 회의를 열고 있다. 매일 네차례씩 회의가 개최되는 꼴이다. 분야별로 세계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여 자국기술의 우위성을 주장하기 위해 불꽃 튀는 논쟁을 벌이고 있다. '표준은 국력'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국제표준화에 적극 참여해 지난 8월말 현재 기술위원회 가입률이 63.9%였고,회의 참가도 총 1백43회로 크게 늘었다. 그러나 미국 독일 등 선진국들의 기술위원회 가입률 81.5%,국제회의 참가 5백여회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전체 회의 중에서 겨우 15% 정도의 회의에 참석한 셈이다. 나머지 회의는 한국이 배제된 채 국제표준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국제표준이 국제협약에 의거해 우리나라 국가표준으로 되돌아온다. 우리도 지금까지의 수세적 입장에서 벗어나 그동안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개발했던 정보기술(IT)을 중심으로 우리 기술을 국제표준으로 열심히 반영해나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할 일이 많다. 국제표준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우수한 기술과 유창한 영어실력,매끄러운 협상력 등 3박자를 갖춘 전문가가 많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전문가를 세계 각지의 표준전쟁 현장에 보내기 위한 출장비와 기술서류를 검토할 수 있는 수당을 지원해야 한다. 기술위원회 가입률을 선진국 수준으로 높이고,필요한 국제표준화 회의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나아가 국제표준화 회의를 주재하는 의장과 간사를 한국에서 맡도록 해야 한다. 우리에게 불리한 국제표준이 제정되지 않도록 하고,우리의 첨단기술을 국제표준으로 반영해야 한다.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개발해 놓고도 영어실력과 협상력 부족으로 다른 나라에 국제표준을 빼앗긴 일본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영어를 배우고 협상력을 키워나가자.주위에서 많은 재목들이 쑥쑥 자라고 있다. 이들이 제대로 클 수 있도록 적극 도와줘야 한다. 매년 10월14일은 세계표준의 날이다. 세계 각국은 이 날 기념식을 갖고 표준의 의미를 되새긴다. 우리나라도 표준주간 행사를 갖고 국제 전문가들이 참석하는 대담과 함께 표준 발전에 공이 큰 유공자를 포상하고 격려한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세계가 '지구촌'으로 좁아지면서 이제는 모든 제품과 서비스시스템이 글로벌 스탠더드로 단일화돼 가고 있다. 세계는 하나의 표준,한번의 시험,전세계 통용(one standard,one testing,accepted worldwide)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무역장벽 없는 지구촌시장을 향해 도도히 움직이고 있다. dckm@ats.go.kr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