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인사동. 가장 한국적인 거리로 외국인들이 즐겨찾는 곳이다. 중심가 양쪽에는 골동품가게 고미술품가게 등이 늘어서 있다. 골동품가게 진열대엔 수백년된 불상도 있고 70년대 아톰인형도 있다. 길거리 역술가 앞에는 젊은 남녀가 쪼그리고 앉아 궁합을 본다. 찻집에서는 작설차 대추차 등 전통차를 내놓는다. 하지만 인사동은 달라졌다. 언제부턴지 이곳에서도 에스프레소 향과 스파게티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다. 현대식 건물도 곳곳에 들어섰다. 인사동은 지금 전통과 현대,한국적인 것과 외국적인 것이 섞인 이색적인 거리로 탈바꿈하고 있다. 일요일인 13일 저녁 7시. 고미술품 전문 삼보당이라고 쓰인 점포 앞에 긴 줄이 늘어서 있다. 5백원짜리 옥수수 찹쌀 호떡을 사려는 사람들이다. 기름으로 튀기듯 구워낸 이 호떡은 산채비빔밥 동동주 전통차와 함께 인사동의 대표 먹거리 중 하나로 꼽힌다. 30년간 고미술품을 취급했다는 삼보당 주인은 "일본까지 소문나 이걸 먹으려고 비행기 타고 오는 사람이 많다"고 자랑한다. 하지만 골동품상 시절을 잊지 못해 옛 간판을 그대로 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인사동을 변화시킨 결정적 계기는 90년대 금융실명제 도입과 외환위기였다. 삼보당 주인은 "금융실명제 도입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외환위기가 터져 골동품 고미술품 시장이 무너지고 말았다"고 들려줬다. 그 후 인사동에 젊은이들이 몰려오는 걸 보고 궁여지책으로 호떡장사를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피리 향초 귀고리 수공예품 꼬치어묵 떡볶이 등 값싼 먹거리와 소품을 파는 노점 1백여개도 비슷한 이유로 생겨났다. 70년대 쫀득이와 달고나 거북선사탕 뺑뺑이 등은 최근 이곳에서 일고 있는 '세미앤틱'의 단면들로 외국인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일본인 게이코(25·일본항공)는 "눈요깃거리와 먹거리가 많다고 해서 처음 와봤다"며 "인사동은 대학로와 종로 남대문시장을 섞어놓은 것 같아 재밌다"고 평했다. 게이코는 이곳에서 칠기 다기세트를 샀다. 내로라하는 비법을 가진 뒷골목 한식집도 최근 수년새 부쩍 늘었다. 맛 경쟁의 결과다. 아리랑민속관의 임신우 매니저는 "최근 4,5년새 전통음식점이 3배로 늘어나 경쟁이 심해졌다"고 말했다. 아리랑민속관은 지난 7월부터 하루 한 차례 전통무용과 창을 공연한다. 그옆에 있는 사찰음식전문점 산촌은 같은시간 승무 살풀이 등 국악놀이판을 벌인다. 전통문화거리로 알려진 인사동에 음식점만 잔뜩 들어서고 젊은이들이 몰려오는 현실에 대해 우려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전주한지의 임동영 사장은 "젊은이들이 늘면서 좋아진 건 뒷골목 음식점과 카페,찻집뿐"이라며 "인사동을 대표하는 화랑이나 골동품점 필방 등에는 도움이 안된다"고 지적했다. 전통문화거리 인사동은 지금 위기에 처해 있다. 임대차보호법 시행을 앞두고 최근 월세가 2배 가까이 오르는 바람에 필방 표구사 공예품점 등은 임대료 벌기도 힘들게 됐다. 상인들은 가게 앞에 좌판을 벌여놓고 관광기념품 액세서리 공예소품 등을 팔기도 한다. 인사동을 떠날까 고민하는 상인도 한둘이 아니다. 공예품점 현문사를 운영하는 이종길씨는 "공방 고미술품 골동품점 등은 절반 이상 떠났다"며 "원래 모습이 갈수록 퇴색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인사동의 변신을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전통문화의 거리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사람들이 몰려오게 하는 변신이라면 마다할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전통공예품을 둘러보고 전통찻집에서 작설차를 마시며 얘기를 나눈 다음 한식집에서 동동주를 마실 수 있는 곳. 이런 곳은 인사동 말고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처럼 무분별하게 변신하다 보면 '전통문화의 거리'가 퇴색할 수 있다는 점을 인사동 사람들은 우려하고 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