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마다 신문지상에는 대선후보들의 지지율이 발표돼 유권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준다. 뭐니뭐니해도 이 지지율 발표에 가장 마음 졸이는 사람들은 출사표를 던진 사람일 것이다. 이들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불원천리 찾아가 표밭을 다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누가 대통령의 자질을 가지고 있는 가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후보가 됐으면 나름대로 자격을 가진 것으로 볼 수는 있지만,후보에도 급수가 있지 않을까. 누가 1급의 후보일까.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했다던가. 대통령의 자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무얼 하겠다'는 공약보다는 '무얼 하지 않겠다'는 공약을 해야 한다. 무얼 하겠다는 공약에 대해서는 식상한지 오래다. 1백개의 공약,2백개의 공약을 내세우면 무얼 하나. 부실한 공약은 하지 않느니만 못하고,공약(空約)이 될 공약(公約)은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 왜 '하겠다'는 적극적 공약보다는 '하지 않겠다'는 소극적 공약이 바람직한가. 무얼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에는 시민들의 공감을 얻기가 쉽지 않다. 수많은 이익집단들의 유형·무형의 압력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도 문제지만,시민들이 바라고 있는 공공선이나 공공재에 대한 개념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정치개혁을 우선으로 삼지만 교육개혁을 시급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또 행정수도를 지방으로 옮기는 걸 찬성하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하는 사람도 만만치 않다. 무얼 하지 않겠다는 공약은 다르다. 권력비리를 저지르지 않고,낙하산 인사를 하지 않으며,지역편중 인사를 하지 않겠다는 등등의 소극적 약속은 명쾌하며 시민들로부터 전적인 공감을 얻기가 쉽다. 시민들은 이루어야 할 선에 대해서는 개념과 비전이 다르지만,뿌리뽑아야 할 악,근절돼야 할 공공악에 대해서는 비교적 일치된 견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뿌리뽑아야할 공공악이 사라지지 않고 있어 우리 정치의 질을 4류로 떨어뜨리고 있지 않은가. 또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대한민국이 하루아침에 유토피아가 될 것처럼 선전하는 사람이 대통령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대통령이 되면 인사가 공정해지고 지역감정이 사라지며 교육의 질도 달라지고 농민과 직장인 모두 소득과 생활수준이 올라가며 내집 마련이 가능해진다고 하는 공언,이것은 명백히 거품성 공약이다. 정치가 '가능성의 예술'이라고는 하지만,모든 가능성이 다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김영삼 정부 때도 낡은 한국과 차별화되는 '신한국 건설'을 외쳤고,현 김대중 정부도 '제1건국'을 뛰어넘는 '제2건국'을 외쳤다. 5년밖에 안되는 짧은 기간 내에 신천지를 만들어 놓겠다고 외치는 것은 좋게 말하면 지나친 욕심이고 나쁘게 말한다면 국민들의 기대만을 올려 놓는 바람잡는 소리다. 진정 대통령 자격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보다 현실적이어야 하고 겸손해야 한다.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대한민국의 질을 1년에 1%,5년동안 도합 5% 발전시키겠다고 해야 신뢰성이 있다. 또 그것이 가능한 목표다. 마치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부패지수 40위 정도에 해당하는 나라가 갑자기 '청정국가'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외치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거나,아니면 스스로 속고 있는 셈이 아니겠는가. 마지막으로 대통령이 될 자격이 있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달콤한 공약보다 사람들의 마음을 긴장하게 만드는 쓰디쓴 공약을 할 줄도 알아야 한다. 예부터 '양약은 입에 쓰다'고 하지 않았던가. 물론 좋은 약과 입에 쓴 약이 동의어는 아니다. 입에 쓰다고 해서 모두 좋은 약은 아니다. 하지만 좋은 약은 입에 쓸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입에 쓴 것은 좋은 약이 되는데 '충분조건'이 될 수 없지만 '필요조건'은 된다. 우리는 대통령이 될 사람들로부터 표만 될 수 있다면 할 수 있는 그런 약속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실천할 수 있는 약속만을 하기를 원한다. 부정부패를 절대 하지 않겠다는 것,1년에 1%씩 한국을 '업그레이드'하겠다는 것,허리띠를 조여 매자는 공약을 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대통령의 자질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parkp@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