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시가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종합주가지수는 600선 밑으로 곤두박질쳤다. 벤처기업의 요람인 코스닥시장도 사상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다. 이같은 폭락장세의 원인은 여러 가지다. 미국경기의 둔화, 미국과 이라크 전쟁위기 등 대외변수를 먼저 꼽는다. 일본경제의 어려움도 한몫하고 있다. 힘들어만 가는 국내 여건도 빼놓을 수 없다. 낙관론으로 일관해온 정부의 금리정책 실기(失機)는 증시에 직격탄을 날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경제체온을 조절하는 금리정책에 문제가 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저금리 정책은 올 들어 눈에 띄게 좋아지는 기업의 실적에 대해 의문부호를 던진데다 부동산 버블과 신용부실을 초래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6개월여 이어진 하락장세로 개인투자자들의 시름은 깊어가고 있다. 종합주가지수가 1,000을 넘는다는 증권사들의 전망을 믿고 투자에 나섰던 '개미'계좌 중 3분1, 5분의1,심지어 10분의1 토막난 게 적지않다는 얘기도 들린다. 종합주가지수가 올 들어 최고치를 기록했던 지난 4월 한달 동안 개미들은 무려 8천4백35억원어치의 주식을 매수했다. 거래소시장 시가총액 상위 20개 종목의 평균 주가는 지난 4월 대비 40.38% 떨어졌다. 투자자의 손실이 얼마나 클지 쉽게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오죽하면 특단의 정부 대책이 나와야 한다는 얘기가 터져나올까. 그런데 정부의 대응자세는 구태 그대로다. 시장근간을 흔들고 있는 기존 경제정책에 대한 신중한 검토 없이 색바랜 대책만 되풀이해 내놓고 있다. IMF사태 이전부터 나왔던 기업연금제도 도입을 이번에 들고 나온 것이 이를 잘 말해준다. 기업연금제도는 분명 필요하다. 문제는 이를 근로자 복지차원이 아닌 증시 대책용으로 생각하는데 있다. 주객이 바뀌었으니 제대로 될 리 없다. 기업연금제도의 도입이 그동안 미뤄져 왔던 것은 당사자인 기업과 근로자가 반대해왔기 때문이다. 현 법정퇴직금제도가 기업연금으로 바뀌면 추가부담이 생긴다는 게 기업과 근로자들의 주장이다. 이런 문제를 잘 알고 있는 정부가 증시대책으로 '내년 중 도입'방침을 밝혔다. 증시대책은 립 서비스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세제 혜택을 주는 금융상품 허용방침은 일순간 위기를 넘기고 보자는 대증요법에 다름 아니다. 증시대책 중 하나인 연기금의 주식투자 증액문제는 현실을 도외시하는 '책상위 작업'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시장은 내년이 아니라 가급적 앞당겨 집행해주길 원하고 있다. 추락에 추락을 거듭하는 코스닥시장의 경우 대책마련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당국은 신규등록기업의 진입을 까다롭게 하고 퇴출규정을 강화하겠다는 원론적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투자자의 진정한 바람은 미국시장 부침 등 해외 변수에 크게 출렁이지 않는 튼튼한 시장 여건을 만드는 데 정부가 앞장서달라는 것이다.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잇따라 등장할 수 있도록 마음놓고 일할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하는 게 증시대책의 으뜸이 아닐까. 이를 위해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이고 회계와 부당거래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는데 정책의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현재 우리 증시는 모멘텀과 투자주체,주도주가 없는 '3무(無) 상황'으로 표현된다. 시장이 가장 싫어하는 '불확실성'이 투자자의 마음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다. 바닥권이나 반등시기를 감히 예상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한발 뒤로 물러나 보면 세계 어느 회사와 경쟁해도 밀리지 않는 좋은 기업 주식을 싼 값에 살 수 있는 기회가 오고 있다는 점도 잊어선 안된다. 개인투자자들이 좋은 주식을 살 수 있도록 유도해주는 정부대책을 다시 한번 기다려본다. songja@hankyung.com